이융희(충북도 송전탑건설 반대 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이융희(충북도 송전탑건설 반대 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송전선로 경과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전력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신영주~신중부, 신중부~신용인, 신원주~동용인, 북천안~신기흥 구간을 잇는 4개 노선의 고압송전선로(345kV) 건설을 추진 중이다. 과거와 달리 후보지로 거론되는 모든 지역에서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돼 지역의회와 환경단체까지 연대해 배수진을 치고 있다. 주민들이 이토록 격렬하게 분노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첫째, 지역의 일방적 희생 때문이다. 이번 송전선로는 통과 지역에 단 1kWh의 전력도 공급하지 않고 전량 용인 반도체 공장으로 직행한다. 막대한 경제적 이익과 일자리는 용인 클러스터 소재 기업과 임직원이 누리고, 재산권·건강권·조망권 침해라는 손실과 위험은 통과 지역 주민이 고스란히 떠안는 불공정한 구도다.

둘째, 절차적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입지선정위원회 위원의 3분의 2 이상을 주민 대표로 배정하도록 제도가 개선되었지만, 위촉된 이장협의회장 등은 위촉 사실조차 주민에게 알리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참석해 주민 의사와 무관하게 발언했다. 주민 대표성이 상실된 이런 기만적 운용에 지역사회가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당연하다.

셋째, 깜깜이 밀실행정과 요식행위다. 주민들은 설명회가 열리기 고작 십여 일 전에야 자신의 삶터가 후보지에 포함된 사실을 알았다. 생업을 뒤로하고 절박하게 호소해도 설명회는 절차를 채우기 위한 통과의례로 열릴 뿐, 사업은 원안대로 강행될 예정이다. 1970~80년대식 일방통행 개발연대의 관행이 2026년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국책사업이니 지중화해주면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혐오시설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상생 조건으로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다. 도시와 농촌을 차별하지 않는 전 구간 지중화가 정답이다. 현재 착공했거나 계획 중인 동서5축 고속도로와 통행량이 적은 세 자릿수 지방도로를 활용하면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한전 측은 기존 방식보다 비용이 5~10배 늘어난다며 난색을 표하지만, 수익자부담 원칙에 따른 재원 분담, 송전선 건설 특수채권 발행, 기금 조성 등 다각적인 금융 해법을 모색하면 지중화 재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송전선로 갈등은 단순한 지역 민원이 아니라, 한전이나 개별 부처의 힘만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이제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야 한다. 갈등이 치유 불능의 사회적 대립으로 비화하기 전에, 대수술에 준하는 결단과 획기적인 처방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oskymo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