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中 대홍수에 국내 네팔인 일상도 슬픔

“현지 친척, 이웃 수십명과 연락두절” 좌절

오는 주말 동대문에서 네팔 추모행사 열기로

지난 30일 네팔 치트완 나라야니 강가에서 네팔과 중국 국경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 수습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 [연합]
지난 30일 네팔 치트완 나라야니 강가에서 네팔과 중국 국경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 수습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혹시 살아 있는데 연락을 못 하는 것인지, 산 쪽에 피해 있는 것인지 계속 찾고 있어요. 사람을 찾지 못하더라도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제주도에 사는 네팔 출신 브룸 스니다(33) 씨는 며칠째 고향에서 들려오는 뉴스만 찾고 또 찾는다. 네팔 대홍수로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자녀들 및 친척들과 연락이 끊겨서다. 특히 이번 사고 지역은 스니다씨와 가족들이 살던 곳으로 그는 “한 마을에서만 55명이 연락되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통신까지 끊기며 부모의 생사도 한동안 확인하지 못했다. 발전기가 들어온 뒤에야 아버지와 통화해 부모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조카 2명은 다쳐 치료받는 상황이다.

지난 3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네팔거리에 있는 한 네팔 전통 음식점 입구의 모습. 정주원 기자
지난 3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네팔거리에 있는 한 네팔 전통 음식점 입구의 모습. 정주원 기자

제주에서 친동생의 네팔 음식점 일을 돕던 스니다씨는 사고 충격으로 며칠째 출근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우리가 가더라도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한국에 있는 네팔인들과 돈을 모아 현지에 보내거나 직접 구호에 나서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 한국의 여러 지원센터에서도 조금이라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네팔 북부를 덮친 대홍수의 충격은 이처럼 수천㎞ 떨어진 국내 네팔인들의 일상까지 흔들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후 헤럴드경제가 서울 종로구 창신동 ‘네팔음식거리’를 찾아가 보니 상인들은 휴대전화와 TV로 구조 상황을 확인하며 고향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고향 소식 기다리며 모모 빚는 네팔 거리

이날 거리에 있는 한 네팔 전통 음식점에서는 직원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한국의 만두를 닮은 네팔 음식 ‘모모’를 빚고 있었다. 반죽을 밀대로 밀고 떼어 내 속을 채우는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고향에서 들려온 참사 소식에 마음은 무거웠지만 한국에서의 일상은 계속되고 있었다.

한국에 온 지 17년 된 식당 주인 머니샤(35) 씨는 “슬프다고 울고만 있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며 “고향에서 어떤 소식이 오는지 기다리면서 후원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봉제공장이 밀집했던 창신동 일대에는 과거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온 네팔인들이 하나둘 자리 잡으면서 식당·식료품점·여행사 등이 들어섰다. 자연스럽게 네팔 출신자들이 모여 교류하는 장소가 됐다.

지난 31일 오후 종로구 창신동 ‘네팔음식거리’의 한 골목길 모습. 인적이 드물고 한적한 모습이다. 정주원 기자
지난 31일 오후 종로구 창신동 ‘네팔음식거리’의 한 골목길 모습. 인적이 드물고 한적한 모습이다. 정주원 기자

이곳에서 작은 소매점을 운영하는 빔 구릉(62) 씨도 연신 휴대전화로 현지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20여년 전 한국에 온 구릉씨는 신설동에서 의료용품 도매업을 하다 지금은 창신동에서 네팔 향신료 등을 판매하고 있다.

구릉씨의 고향은 피해 지역과 떨어진 포카라지만 관심은 온통 구조작업에 쏠렸다. 그는 “히말라야 쪽에서는 눈사태가 자주 일어나지만 이번에는 너무 크게 났다”며 “터널을 뚫었는데 그 아래에 또 다른 터널이 있고 거기에 사람들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했다.

구릉씨는 네팔 정부가 구호를 위한 계좌를 개설해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며 자신을 비롯한 국내 네팔인들도 가능한 범위에서 성금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거리에서 만난 네팔인들에게 이번 재난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직접 피해를 보지 않았더라도 친척이나 지인을 통해 피해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식당 종업원들은 손님을 맞으면서도 TV에 나오는 현지 뉴스에 눈을 떼지 못했다.

명절 축제도 추모식으로 “생업은 이어가야”

참사 여파는 국내 네팔인들의 행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네팔인들이 모이는 명절 행사는 피해자들을 기리는 추모의 자리로 바뀔 예정이다.

창신동에서 25년째 살고 있는 라이(57) 씨는 “이번 주 토요일 저녁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인근에서 네팔 사람들이 모여 추모식을 열 예정”이라며 “평일에는 다들 일을 하기 때문에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주말에 하기로 계획했다”고 말했다.

주한 네팔대사관도 한국에 거주하는 네팔인 가운데 피해 가족이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라이씨는 “대사관에서도 피해자 가족이 있으면 본국에 다녀오는 문제나 지원 방법을 상의할 수 있으니 연락해 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참사 이후 네팔 거리의 손님도 줄었다. 라이씨는 “여기 있는 사람들도 충격을 받아 활동을 잘 하지 않는 느낌”이라며 “잘사는 나라에서도 이런 큰 재난이 일어나면 수습하기 쉽지 않은데 네팔은 고산지대라 더 어렵다”고 했다.

지난 29일 네팔 비두르 트리슐리 군사기지 앞에서 두산에너빌리티 소속 네팔인 작업자를 찾는 전달지를 든 시민이 눈물을 보이고 있다. [연합]
지난 29일 네팔 비두르 트리슐리 군사기지 앞에서 두산에너빌리티 소속 네팔인 작업자를 찾는 전달지를 든 시민이 눈물을 보이고 있다. [연합]

네팔 전통음식 전문점 종업원 A씨는 “마음은 아프지만 지금은 고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조금이라도 좋은 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며 “생업은 포기할 수 없어 장사는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네팔 거리에서는 한국인 실종자들의 구조 소식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인 남편과 함께 사는 레티홍(43) 씨는 “남편의 직장 동료인 두산에너빌리티 직원들이 프로젝트 때문에 네팔에 갔다가 연락이 끊겼다”며 “실종된 직원들의 소식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jookapook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