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개정안 관련 입법의견 쇄도
종부세 2806건·소득세 1781건 의견 접수
‘1년 선거주·다른 시군·최장 3년’ 완화 요구
구윤철 “불가피한 사정 국민 입장 추가 검토”
정부가 ‘실거주’를 기준으로 부동산 세제를 개편하면서 불가피하게 자기 집에 거주하지 못하는 1주택자까지 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반발이 커지고 있다. 취학이나 직장 변경, 질병 치료 등에 예외를 두기로 했지만 손주 돌봄처럼 현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정을 일일이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에 따르면 재정경제부가 지난 4일 입법예고한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에는 이날 오전 9시 30분 기준 2806건의 입법 의견이 접수됐다. 양도소득세 개편 등이 담긴 소득세법 개정안에도 1781건의 의견이 제시됐다. 정부 정책에 이처럼 단기간에 1000건이 넘는 입법 의견이 접수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입법 의견 중에는 정부가 제시한 예외 사유만으로는 다양한 비거주 사정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상당수로 나타났다.
의견을 제출한 김모씨는 손주 돌봄으로 불가피하게 자기 집에 거주하지 못하는 경우도 예외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씨는 맞벌이인 딸을 대신해 손주가 태어날 때부터 성동구에서 돌봐왔고 이후 딸이 강동구 아파트에 당첨돼 이사하자 손주 돌봄을 이어가기 위해 20년간 거주한 성수동 아파트를 전세 주고 딸이 사는 아파트 옆 동으로 이주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경우까지 비거주에 따른 세제상 불이익을 주는 것은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출산 장려 정책에도 역행한다며 예외 인정을 요구했다.
같은 시·군 안에서 이뤄지는 돌봄 목적의 이사도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모씨는 입법의견에서 야근이 잦은 직업 특성상 조부모의 자녀 양육 도움이 필요해 같은 시 안에서 조부모 거주지와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안의 ‘다른 시·군 거주’ 요건을 삭제하거나 완화해 달라며 행정구역 경계를 넘었는지 여부만으로 세제상 불이익을 가하는 것은 현실적인 양육 환경과 주거 형태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특수교육이나 치료처럼 당장 거주지를 옮기기 어려운 사정도 제시됐다. 한 시민은 특수교육대상자인 초등학생 자녀가 오랜 기간에 걸쳐 현재 학교와 치료·교육 환경에 적응한 상황에서 보유 주택으로 이사할 경우 교육·치료의 연속성이 깨질 수 있다며 예외 인정을 요청했다.
부모 봉양과 관련해서는 예외 인정 요건과 기간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 달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90대 부모를 돌보고 있다는 한 시민은 입법의견에서 “(세금 때문에) 효도를 포기해야 하냐”고 되물었다. 그는 부모를 돌보기 위해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한 채 11년간 부모 거주지 인근에서 생활해왔다며 처음부터 입주하지 못한 경우에는 ‘1년 이상 거주’ 요건을 충족할 수 없는 만큼 이를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실거주 인정기간을 최장 3년으로 제한한 데 대한 지적도 나왔다. 75세가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한 시민은 “부모 봉양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며 실제 동거봉양 기간 전체를 실거주기간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산정할 때 실제 거주하지 않은 기간도 거주기간으로 인정하는 예외를 두기로 했다. 세부적으로 ▷고등학교·대학교 취학 ▷직장 변경·전근 등 근무상 형편 ▷1년 이상 치료·요양이 필요한 질병 ▷학교폭력 피해에 따른 전학 ▷취학·근무상 형편으로 인한 해외체류 ▷60세 이상 직계존속 동거봉양 등이다. 이와 유사한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과세관청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따져 개별적으로 인정할 방침이다.
다만 제도 악용을 막기 위해 본인 소유 주택에서 1년 이상 거주하다 부득이한 사유로 다른 시·군으로 거주지를 옮긴 경우에만 예외를 적용하고 비거주 기간을 거주기간으로 인정하는 기간도 최장 3년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입법예고 과정에서 예외 규정을 보완해 달라는 요청이 잇따르는 만큼 향후 시행령 마련 과정에서는 육아·돌봄이나 특수교육 등 현재 명시되지 않은 사유를 어디까지 부득이한 비거주로 인정할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다른 시·군 이전’, ‘1년 이상 선거주’, ‘최장 3년’ 등의 요건을 개별 사정에 따라 얼마나 유연하게 적용할지도 관건이다.
정부도 다양한 사정을 고려해 예외 사유와 적용 요건을 보완할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최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취학·직장 변경·질병 등 불가피한 실거주 예외 사유는 최대한 국민 입장에서 보겠다”며 “법 통과 후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국민 의견을 더 듣고 최대한 신축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구 부총리는 최장 3년으로 정한 인정기간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는 3년으로 했지만 진짜 불가피한 예외가 있으면 국민 의견을 들어 한 번 더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이와 별개로 정부는 세제개편 이후 토지거래허가제와의 정책 정합성을 높이기 위한 후속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올해 말 종료되는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주택의 ‘실거주 의무 유예’ 특례를 연장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올해 5월 12일 기준 임대 중인 주택을 무주택자가 매수하는 경우 기존 임대차계약의 잔여 기간을 고려해 매수자의 실거주 의무를 최장 2028년 5월 11일까지 유예하고 있다. 이 특례는 올해 12월 31일까지 접수된 토지거래허가 신청에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정부는 특례가 연말 종료되면 내년부터 세입자를 낀 주택의 거래가 어려워져 세제개편을 통한 매물 출회 효과를 제약할 수 있다고 보고 적용 기한을 연장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양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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