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불가 대한민국’을 슬로건으로 내건 ‘3대 메가프로젝트’가 닻을 올렸다.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AI 등 첨단산업에 정부와 민간이 1500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국가 전략 프로젝트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산업 프로젝트이자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승부수다.
막대한 투자가 예고된 만큼 관심은 자연스럽게 글로벌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대기업에 집중된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지속 가능성과 산업적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는 의외로 중소 제조기업의 경쟁력에 달렸다는 목소리가 높다.
첨단산업은 특정 기업만의 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반도체 생산라인에는 수천 개의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참여한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서버와 냉각장치, 전력설비, 배관, 자동화 설비 등 폭넓은 제조 생태계를 기반으로 구축된다.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수록 공급망의 저변은 넓어진다. 결국 메가프로젝트의 성공은 얼마나 많은 국내 제조기업이 새로운 공급망에 편입되느냐에 달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메가프로젝트는 중소 제조기업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다. 정밀가공과 특수용접, 산업기계, 금형, 자동화 설비 등 오랜 기간 축적한 제조 기술력은 첨단산업에서도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자동차나 조선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하던 기업들이 반도체 장비 부품, 데이터센터 기반시설, 차세대 에너지 설비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계기가 될 것이란 희망을 품고 있다.
글로벌 제조업의 화두가 ‘공급망 다변화’라는 점도 긍정적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며 단순히 가격이 낮은 공급처보다 안정성과 기술력을 갖춘 협력기업 확보가 한층 중요해졌다. 이는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중소 제조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지역 분산’ 역시 메가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를 요소다. 수도권에 집중된 핵심 산업을 지방에 분산해 지역 균형발전을 이룬다는 게 이 프로젝트의 취지다. 하지만 취지대로 성과가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과거 대형 국책사업의 경우 생산시설은 지방에 두고 핵심 장비와 고부가가치 공정, 연구개발 기능은 수도권, 대기업이 담당하면서 지역 기업은 단순 시공이나 하도급에 머무른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런 구조가 반복된다면 지역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정책 목표는 한낱 구호에 그칠 수 있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은 산업단지 조성 자체보다 지역 기업의 공급망 참여 확대에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대-중소기업 간 공동 R&D를 활성화하고, 지역에 실증 테스트베드와 인증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지역 기업이 초기 단계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달·발주 체계의 문턱도 낮춰야 한다.
인력 확보도 핵심 과제다. 첨단 제조업은 숙련 기술자와 디지털 역량을 갖춘 인재를 동시에 요구하지만 지방 제조현장의 인력난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이 연계한 맞춤형 인재 양성과 재직자 교육체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대규모 투자에도 산업 생태계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메가프로젝트는 지역 제조업에 호재임이 분명하다. 그 기회를 일회성 수주에 그칠 것인지, 산업구조 고도화의 전환점으로 만들 것인지는 정부의 정책 설계와 기업의 혁신 노력에 달려 있다. 메가프로젝트의 진정한 성과는 대기업 공장의 숫자가 아니라, 전국 곳곳의 중소 제조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역할의 크기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유재훈 에디터
igiza77@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