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대한민국은 들썩들썩했다. 묘한 설렘과 흥분이 공기중에 떠돌고 있었다. 회사들은 출근시간까지 늦추며 그 분위기를 감싸안았다. 경기 시작 14분, 김종부의 슛이 터졌다. 1대0, 꿈 같은 골이었다.
1983년 6월 15일 오전 8시 멕시코 FIFA 세계청소년축구대회 준결승전. 대한민국의 젊은 축구선수들이 세계 최강 브라질과 마주했고 먼저 골을 넣었다. 설마 이대로 결승? 언감생심, 마음조차 먹을 수 없던 일이었다.
북한이 심판 구타사건으로 2년간 국제대회 출전정지 처분을 받지 않았다면 나서지도 못하는 자리였다. 운 좋은 대타 출전이었으며, 관심도 덜했고 길도 험난했다. 유럽 강호 스코틀랜드, 지역예선 5전승의 호주, 우승까지 넘보는 홈팀 멕시코가 같은 조였다.
스코틀랜드와의 첫 경기는 0대2 패.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기적은 그때 시작되었다. 페널티킥을 놓치고도 멕시코를 2대1로 꺾었다. 호주마저 2대1로 제압했다. 청소년이었지만 대한민국의 FIFA대회 첫 8강이었다.
희망이 샘솟았으나 다음 길은 기약할 수 없었다. 월드컵 2회 우승의 우르과이였다. 하지만 뛰고 또 뛰어 연장전에서 2대1로 4강문을 열어젖혔다. 결승행의 마지막 관문은 브라질. 선제골을 잡았지만 1대2로 역전패했다.
세계축구계가 놀란 장면, 장면들이었다. 남미의 테크닉, 유럽의 힘을 뛰어넘은 투지의 벌떼작전이었다. 해외 언론들은 성난 파도처럼 쉴새없이 휘몰아치는 붉은 유니폼의 그들을 ‘붉은 악령’ ‘붉은 악마군단’이라고 치켜세우며 그 엄청난 전투력에 존경심을 보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의 ‘붉은악마’ 원조였다.
2026년 6월 19일 멕시코 과달라하라. 대한민국이 홈팀 멕시코와 월드컵 예선 A조 두 번째 경기를 갖는다. 43년 전의 젊은 피를 이어받아 승리한다면 32강 진출은 확정적이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멕시코는 우리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곳이라 그 길이 아주 힘들진 않다.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축구 인연은 간단치 않다. 대한민국 국호로 처음 출전한 1948년 런던 올림픽 축구 16강전에서 우리가 멕시코를 5대3으로 꺾었다. 그러나 두 차례 월드컵에선 모두 졌다. 1998년 프랑스에서 1대3, 2018년 러시아에선 1대2로 패했다.
러시아에선 멕시코가 톡톡히 덕을 봤다. 스웨덴에게 0대3으로 패해 탈락 직전이었으나 한국이 독일을 2대0으로 잡아 기사회생했다. 멕시코는 한국을 향해 고맙다며 ‘그라시아스’를 외쳤고 두번째 골을 넣은 손흥민을 똑똑히 기억했다.
멕시코에서의 월드컵은 두 번째. 1954년 스위스 후 32년 만에 나선 것이 1986년 6월의 첫 멕시코 대회였다. 차범근·최순호·허정무 등 레전드들의 무대였지만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와 그 전 우승팀 이탈리아의 벽은 너무 높았다. 그래도 불가리아와 비겨 첫 승점을 올리는 등 3게임에서 4골을 쏘았다.
약속의 땅에서 만나는 질긴 인연의 멕시코. 조편성은 잘됐다. 1코트의 멕시코(FIFA 15위)뿐 아니라 3코트의 체코(41위), 4코트의 남아공(60위)도 각 파트에서 약한 팀이다. FIFA 랭킹엔 허수가 있지만 좋은 기운이 감도는데다 BTS의 팬심도 두터운 곳이다. 더욱이 남아공과의 3차전이 열리는 곳은 1983년 우르과이를 꺾고 4강에 오른 바로 그 몬테레이다. 2002년 6월의 그 뜨거운 열기가 그리워진다.
이영만 전 대표이사
soohan@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