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포모’(FOMO) 신드롬을 앓는 시대다. ‘피어 오브 미싱 아웃’(Fear Of Missing Out). 직역하자면 어떤 집단이나 어떤 기회로부터 나만 혼자 ‘빠지게 될’(missing out) 두려움이다. 저녁 늦도록 술래잡기를 하다가 친구들은 모두 집에 간 것을 모르고 나 홀로 남겨졌을 때의 낭패감, 소풍날인 것을 모르고 여느날과 같이 등교했더니 학교는 텅 비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의 당혹감. 어린 시절 모두가 한번쯤 겪어봤거나 상상했었을 법한 이런 상황이야말로 포모의 원형일 것이다.
나만 도태되는 느낌. 다들 앞으로 달려가는데 나만 뒤쳐지는 기분. 다들 잘 풀리는데 내 인생만 꼬이는 열패감. 나만 빼놓고 모두가 알고 있는 듯한 소외감.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에 놓인 ‘포모’의 수렁은 더 넓고 깊어진다. 성인이 될수록 가슴에 긁히는 ‘포모’의 칼 끝도 더욱 날카로워진다.
진화는 영장류의 뇌가 느끼는 쾌락이나 행복감을 상대적인 것이 되도록 설계해왔다. ‘남들은 10만큼 갖고 나만 1만큼 갖게 되는 경우’와 ‘나를 포함해 모두가 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경우’ 중에서 택일한다면 후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많은 심리·생물학적 실험에서 확인됐다. 남들이 갖는 몫이 더 크다고 내 몫을 아예 포기하는 것은 고전경제학에서 가정한 ‘합리적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현대의 행동경제학과 뇌과학, 심리학은 사람들이 처벌(불행)보다는 보상(행복)의 상대적 크기에 더 민감한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주위 여기저기에서 잠자던 주식계좌가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식이 들린다. 몇 개월만에 누구는 몇 억을, 누구는 몇 천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마치 한 집 건너 하나 꼴일 정도로 흔하지만 유독 나만 아니다. 2026년 ‘포모’의 폭포수같은 발원지는 주식이다. 집값이 치솟을 때도, 비트코인이 급등했을 때도 ‘포모’가 만연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만해도 그저 부러운 ‘남의 얘기’에 더 가까웠지만, 지금은 내가 주인공이었어야 할, 아직까지 아니었다면 이제부터라도 마땅히 내가 주인공이어야 할 운명적 이야기가 돼 버렸다. 이 운명을 따라 잡지 못하면 낙오된다는 강박. 포모 신드롬을 전 국민이 아는 일상어가 되게 한 것은 최근 1년간 코스피의 유례없는 급등세였지만, 꾸준히 확산되고 부풀려져온 우리 사회 경쟁지상주의와 능력주의의 압축적이고 극적인 단면일 뿐이다.
이 때에 등장한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무자무싸’, 연출 차영훈)는 ‘포모 증후군’의 팬데믹(대유행) 시대를 위로하는 컨텐츠라고 할 것이다. 친구와 선후배들은 다 영화판에서 잘 나가는데 나만 데뷔를 하지 못한 채 질투심에 절어 있는 영화감독 황동만(구교환 분)이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는 지난 4월 18일부터 5월 24일까지 주 2회 총 12부작으로 JTBC에서 방영됐으며, 넷플릭스에 올라있다.
‘모자무싸’, 존재증명을 위해 싸우는 인물들
황동만은 영화계 선후배가 모인 ‘8인회’의 일원이다. 다른 멤버들은 영화판에서 감독, 프로듀서(PD), 제작자, 작가 등으로 한 몫씩을 하고 있지만, 오직 황동만만이 데뷔작을 찍지 못하고 알바를 전전하고 있다. 그게 20년째다. 모임에서도 온라인에서도 불평과 불만, 독설을 입에 달고 사니 그가 있는 곳은 늘 불화와 말썽이다. 누구에게나 기피대상 1호다. 그런데 그를 귀히 여기는 상대를 만난다. 황동만의 재능과 개성을 응원하는 영화사 PD 변은아(고윤정)다. 드라마는 두 남녀와 함께 황동만의 ‘앙숙’이자 ‘자격지심’ 덩어리인 영화감독 박경세(오정세)와 그의 부인이자 영화사 대표인 고혜진(강말금)을 이야기의 중심 축에 놓는다. 여기에 황동만의 형이자 실패한 시인이며 용접공인 황진만(박해준), 어린 딸 변은아를 버리고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달려온 톱스타 여배우 오정희(배종옥), 오정희의 의붓딸인 여배우 장미란(한선화) 등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이 드라마의 주요 인물들은 제목처럼 모두,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악전고투를 펼친다. 다른 이들의 삶으로부터, 관계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삭제되지 않기 위한 싸움이다. 황동만은 데뷔만이라도 해서 ‘무직’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이 목표라고 절규한다. 황동만이 링에라도 일단 올라 자신이 ‘복서’임을 증명하고 싶은 인물이라면, 박경세는 흥행과 호평으로 링 위에서의 승자임을 과시하고픈 복서다. 링 바깥에서도 이들의 인정투쟁은 절박하다. 황동만은 형 황진만에게 떳떳한 동생이 돼야 한다. 박경세는 부인이 제작자가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는 남편이어야 한다. 고혜진은 영화감독 박경세의 영화제작자일 뿐 아니라 남편에 영감을 주는 부인이기도 해야 한다. 변은아는 자신을 버린 친엄마 오정희와 옛 연인의 저주로부터 풀려나야 한다. 옛 연인인 영화 감독의 시나리오 속에 숨겨진 ‘그림자 작가’가 아닌 PD이자 작가로서의 이름을 얻어야 한다. 오정희는 장미란의 계모이자 변은아의 친모라는 자리 사이에서 최고의 배우라는 사회적 성공을 기필코 지켜내야 한다. 황진만은 시(詩)라는, 한때 자신만의 성에 스스로를 가두는 바람에 잃어버리게 된 딸을 되찾아 ‘아버지’임을 증명해야 하고, 변은아와 장미란은 반대로 누군가의 자식임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님을 납득받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걸어다니는 ‘감정덩어리들’
“길거리를 보면요,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게 아니에요. 거대한 ‘감정덩어리’들이 걸어다니는 것 같아요. 걸음걸이 하나, 표정 하나에 그 사람의 총체적인 감정이 다 배어 있거든요. 엄마는 무슨 감정덩어리인줄 알아요? 경멸 덩어리.”
극중 변은아가 친모이자 당대 최고 배우인 오정희 면전에 대고 하는 말이다. ‘무가치함’과 함께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열쇠말은 ‘감정’이다. 황동만과 변은아는 각각 어느 기술 기업에서 모집한 ‘감정워치’의 실험에 참여하게 되는데, 서로간에는 이를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감정워치’는 맥박, 호흡, 혈압, 산호포화도 등 신체의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 ‘기쁨’ ‘슬픔’ ‘짜증’ ‘불쾌’ 등 사용자가 어떤 감정상태인지를 실시간으로 표시해주는 기기다. 부정적 감정은 빨강, 긍정적 감정은 파랑이 배경색이다. 변은아가 극 후반부에 감정워치 회사가 마련해준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에서 듣게 된 말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제를 드러낸다.
정신과 의사는 “스토리의 생생함은 감정으로 만든다”고 한다. 또 “부정적인 감정은 정확히 읽히는 순간 제어가 된다”며 “적어도 망상에 망상을 덧붙여서 점점 더 커지게 하지는 않는다. 감정이 엷어지면 스토리의 힘도 약해진다”고 한다. 그러면서 변은아에게 “그동안 (영화와 시나리오를 통해) 감정 보는 연습을 많이 해서 이제 감정 워치 없어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감정을 읽는 연습을 한번 해 보라”고 조언한다.
이 대사들로 보자면 ‘모자무싸’는 스스로의 감정을 정확하게 읽는 법에 대한 드라마이다. 잘 나가는 동료들을 향한 질투(황동만), 자신을 버린 엄마를 응징하고자 하는 마음(변은아), 부인 덕에 성공했을 뿐 ‘찌질한’ 황동만과 다르지 않다는 자격지심(박경세) 등 스스로의 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다면, 머리 속에서 거대하게 부풀려져 결국은 스스로를 삼켜버리고 마는 ‘컴플렉스의 드라마’를 지워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AI) 기업인이자 전문가인 맥스 베넷의 AI·뇌과학 저서인 ‘지능의 기원’은 동물이나 영장류, 사람이 갖는 감정의 진화적 기원을 ‘회피’와 ‘탐색’으로 규정한다. 위험을 피하고 먹이를 찾기 위한 생존 본능으로부터 감정이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물 최초의 뇌로부터 현생 인류가 물려받은 감정의 특성을 ‘감정가’와 ‘각성’으로 구분한다. ‘감정가’는 좋은 기분과 나쁜 기분 즉 긍정적 감정가와 부정적 감정가로, ‘각성’은 맥박이 빨리 뛰고 근육이 긴장하는 높은 각성과 그 반대인 낮은 각성으로 나뉜다. 그래서 대부분의 감정은 ‘긍·부정 감정가’와 ‘높·낮음 각성’이 교차하는 4가지 영역 중 한 곳에 놓인다. 예를 들어 흥분·행복·환희는 긍정(감정가)·높음(각성)이고, 만족·침착·이완은 긍정·낮음이며, 불안·긴장·당황은 부정·높음이며, 우울·슬픔·지루함은 부정·낮음이다.
결국, 드라마에 따르면 ‘감정을 정확히 읽는 법’은 각자 내면의 상처와 결핍을 직시하는 것일 터이다. 그것이 경쟁과 비교 등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더욱 극대화되는 컴플렉스와 스스로만의 망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첫 걸음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연대와 공동체성 회복으로서의 ‘박해영 월드’
모두가 어디론가 떠나고 나혼자만 덩그라니 남은 느낌, 남들은 저 멀리 앞서가고 나 홀로 제자리에 멈춘 느낌. 이 지독한 포모와 소외감, 열패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될 수 없다. 나의 상처와 결핍을 들여다 보는 일조차 나 혼자는 이를 수 없는 경지다. 모든 위기는 관계로부터 비롯됐으나, 치유와 구원 또한 관계로부터 이뤄져야 한다.
전작들(‘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을 포함해 박해영 작가의 작품에선 이야기의 출발점에 위기에 처한 인물들이 있다. 탈락, 낙오, 도태의 경계에서 분투하는 인물들이다. ‘나의 아저씨’에선 승진에서 탈락하고 아내로부터 배신당한 박동훈(이선균)과, 사회 밑바닥에 내던져진 이지안(아이유)이 그랬다. 명예퇴직 백수인 큰형(박호산)과 데뷔작이 마지막이었던 영화감독 막내(송새벽) 등 박동훈 형제나, 연인을 버리고 출가한 박동훈의 친구 겸덕(박해준)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해방일지’에선 염씨네 3남매(이엘·김지원·이민기) 모두 회사와 연애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고 무시받는 존재이다. 염씨 가족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경기도의 끝에 간신히 붙어 살고 있다. 이웃 구씨(손석구) 또한 서울에서 패배하고 시골에 숨어살며 술로 매일을 버티는 남자다.
박해영 작가의 작품 속 주요 남자들은 지나치게 말이 없거나 지나치게 떠벌이거나 둘 중 하나다. 박동훈이나 그의 친구인 승려 겸덕, 구씨, 그리고 황동만의 형 진만은 말수 없는 사내들이다. 반면 박동훈의 막내와 염씨남매의 막내, 황동만과 박경세는 당최 입을 가만 놔두는 법이 없다. 그러나 말이 없어도 말이 많아도 그들은 한가지다. 세상 밖으로 밀려나 추락하기 직전의 존재들이거나 존재들이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불안과 위기감은 그들로 하여금 입을 아예 닫게 하거나 말을 쏟아내도록 했다.
이들의 위기는 곧 관계의 위기, 가족의 위기, 공동체의 위기이기도 하다. 박해영 작가는 위기에 놓인 이들이 서로 손을 내밀어 지지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이 더 강한 힘으로 제자리에 서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놓는다. ‘나의 아저씨’에서의 도준영(김영민)을 제외하고는 절대적인 악한도 선인도 없는 이 세계에선 결국 개인과 가족, 공동체를 지지하는 것은 개인 각자 내면에 있는 선함, 우의, 연민이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에서 인물들의 처음과 끝 자리는 대단히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거기에 여전히 서 있을 뿐인데, 자아는 더 성장하고, 서로간의 연대가 더 굳건해졌을 뿐이다. 박해영의 드라마에선 끝내 어른은 어른의 역할을, 청년은 청년의 역할을,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자식은 자식의 역할을, 형제는 형제의 역할을, 부부는 부부의 역할을 한다. 모두가 모두를 도움으로써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공동체는 회복된다.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의 가사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함축하는 의미 그대로일 것이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는 대개 상처와 결핍을 지닌 존재로서 개인과 개인이 맺는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가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결말로 나아간다. 여기서 가족과 공동체성은 일정한 시공간에서 지속되는 관계의 총체다. 박 작가는 매우 창의적인 방식의 인물과 스토리를 보여주지만, 결국은 기존 가족·공동체의 가치와 제도를 재확립, 재확인한다는 점에서 사회비판적이라기보다는 ‘보수적’인 텍스트라고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드라마는 대중예술이 갖출 수 있는 가장 품격있고, 가장 창의적으로 구현된 보수성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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