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비행시험에 성공하면서 이를 견제하기 위한 국내 핵잠수함 보유론이 정치권에서 부상하고 있지만 우리 군 당국은 이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29일 정례브리핑에서 정치권에서 핵추진 잠수함이 거론되고 있는 것에 대해 “현 상황에 대한 우려 속에서 나온말로 이해한다”면서 “현재 핵추진 잠수함 문제에 대해선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핵원료를 사용하는 핵추진 잠수함의 특성상 국제사회의 견제가 강하게 이뤄지고 있어 군사적 당위성 외에 외교력 등이 필요해 이를 구체화하려면 최고 지도자의 결심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앞서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우리 해군은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나선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도 국제사회의 견제로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다.
지난 2003년, 2020년까지 4000t급 핵추진 잠수함 3척을 건조하는 일명 362사업을 추진하던 군은 그러나 1년 만에 이 계획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사업을 접었다. 당시 17억원을 투입해 배수량과 탑재 무장장비 등에 대한 개념설계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 착수와 추진이 모두 최고 지도자 결심이 없으면 불가능함을 방증한다. 또한 최고 지도자의 결심이 있더라도 난관이 많아 중도 포기할 공산이 크다.
북한이 지난 24일 발사한 SLBM은 잠수함에 탑재돼 전 세계 어디든 은밀히 침투해 타격이 가능하다.
만약 SLBM에 핵탄두를 탑재할 경우, 전 세계 어느 도시든 핵무기 공격 대상이 된다. 해저로 근해까지 침투해 불과 수십㎞ 거리에서 마하10 전후의 속도로 비행하는 SLBM을 발사하면 방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미사일방어체계도 대안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북한 SLBM 방어책은 북한 잠수함을 밀착 감시하는 것이다. 북한 잠수함 기지를 위성으로 면밀히 관찰하다 잠수함이 출동하면 아군 잠수함이 출동해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SLBM 발사 등 특이동향이 있을 때 선제 대응이 가능하다.
문제는 감시작전에 필요한 잠수함 성능이 적 잠수함보다 속도나 잠항능력, 공격력 등의 면에서 1.5배 정도는 우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적 잠수함이 우리 잠수함을 따돌리기 위해 속력을 내거나 기만작전을 할 때 흔들림 없이 대응하려면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잠항시간도 길어야 한다. 또한 유사시 적 잠수함을 공격해 SLBM 발사 시도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현재의 디젤 잠수함은 축전지 충전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받기 위해 수시로 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핵추진 잠수함은 물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어 잠항 능력이 무제한이다. 핵추진 잠수함이 향후 감시작전에 필수 요소인 이유다.
북한은 현재 SLBM 1발 발사가 가능한 신포급(2000t)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향후 SLBM 3발 발사가 가능한 3000t급 잠수함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으로 3000t급 핵추진 잠수함은 프랑스가 개발한 루비급(2640t)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북한이 3000t급을 핵추진 잠수함으로 개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북한이 3000t급을 디젤잠수함으로 조속히 개발하고 실전배치한 뒤 이보다 더 강력한 6500t급 잠수함(SLBM 12발 발사) 개발에 나서 이를 핵추진 잠수함으로 만들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 관련 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핵추진 잠수함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군 당국은 “현재까지 핵추진 잠수함 건조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핵추진 잠수함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문 대변인은 미군의 핵추진 잠수함이 있어 당장 개발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와는 별도의 얘기”라며 선을 그었다.
핵추진 잠수함의 필요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군이 침묵하고 있는 건 핵추진 잠수함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군은 명령에 따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