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추진중인 용산공원 사업계획 전면수정을 주장했지만, 정부는 기존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용산공원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 5월에도 국토교통부의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 및 정비구역 변경 공청회’에서 나온 용산공원 정부안에 반대한 바 있다. 당시 서울시는 국토부가 2017년 말부터 10년간 용산공원 부지에 8개 부, 처, 청 등의 기관을 건립하겠다고 밝히자 용산공원 조성의 기본 취지를 강조하며 재검토를 주장했다.
서울시는 이번에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 정부 계획으로 용산공원을 개발하면 용산공원 부지의 상당 부분을 정부 부처가 점유하게 되고, 한미연합사 등 일부 미군이 잔류해 용산공원이 도심 속의 허파, 서울의 ‘센트럴파크’ 역할을 하기에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박 시장은 현재 계획된 용산공원 터 358만㎡ 부지 내에 국방부, 방위사업청,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등 정부시설이 93만㎡를 점유하고 있고 이곳에 미국대사관, 드래곤힐 호텔, 헬기장, 한미연합사 등 미군 잔류부지 22만㎡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지적한다. 358만㎡ 부지에서 32%에 해당하는 115만㎡가 용산공원을 기형적으로 만들 거라는 우려다.
특히 용산 미군기지에 잔류하는 한미연합사령부 측이 원하는 부지가 용산공원 중심부에 해당돼 우려는 더 커진다. 애초 청나라 군대, 일본군, 미군 등이 순차적으로 점유했던 용산 기지를 이전하고 그 자리에 민족정기 회복을 위한 용산민족공원을 짓는다는 기본 취지를 정면으로 훼손하고 있어서다.
박 시장은 또한 “국토부가 공원 성격을 명확히 하지 않아 용산공원이 최초의 국가공원이라는 의미가 묻혔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용산공원 추진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시 명명된 용산민족공원이라는 명칭을 없앤 것에 대한 지적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제안을 귀담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국토부는 이날 박 시장의 주장에 대해 “조성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며 반박했다.
▶한국 현대사의 아물지 못한 상처, 용산=최근 민간인 접근이 제한되는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내에서 진짜 ‘용산’을 다녀온 적이 있다.
용산구 일대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곳, 용산(龍山)이 있다는 곳이다. 서울 한복판에 펼쳐진 넓은 평지에서 ‘용산’은 야트막한 동산처럼 아주 조금 솟아 있다. 올라가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제법 주변 지형이 내려다보인다. 그야말로 서울의 한복판이다. 대한제국 말기 청나라 군대가 점령했던 지역, 일제시대 일본군이 차지한 지역, 광복 후 미군이 들어선 지역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못한 곳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미 전시작전권 전환,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 용산민족공원 조성 계획이 동시에 추진됐다. 민족정기 회복이라는 당위성이 거론됐다. 그의 재임 기간인 2003년 2월 25일부터 2008년 2월 24일까지 기정 사실인줄로만 알았던 전시작전권 전환, 용산 미군기지 평택 이전, 용산민족공원 조성사업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러나,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전시작전권 전환은 2020년대 중반쯤으로 시기가 모호하게 미뤄졌다. 용산 미군기지 평택 이전은 올해 5월에야 시작돼 내년 말에나 끝날 전망이다. 용산민족공원 조성사업은 아직 첫 삽도 뜨지 않았다.
이 3가지는 마치 하나의 사안처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전시작전권 전환이 미뤄지면서 용산 미군기지 평택 이전이 속절없이 늦춰지고, 용산 미군기지 이전이 미뤄지면서 용산민족공원 조성사업도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전시작전권 연기→평택기지 이전 연기→용산공원 연기=노 대통령 집권 당시인 2007년 한미는 전시작전권 전환 날짜를 2012년 4월 17일로 못박았다. 그러나 이명박이 재임중이던 2010년 이 날짜를 뒤집었다. 자신의 임기 이후인 2015년 12월 1일로 전환 시점을 연기했다.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4년 10월 23일에는 이 날짜를 또 미뤘다. 이번에는 확정된 날짜도 없이 2020년대 중반쯤으로만 전작권 전환 시기가 설정됐다.
전시작전권 전환 시점이 또 미뤄진 2014년 하반기에는 미군들 사이에서 ‘용산 미군기지가 평택 미군기지로 안 갈 수도 있다’는 소문마저 널리 퍼졌다고 한다.
당시 평택 미군기지 공사를 담당하던 국내 굴지의 한 건설사 관계자는 “미군들이 평택 미군기지 공사에 대해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사에 필요한 작은 결정 하나도 쉽게 나지 않는다. 공사 기간이 계속 늘어진다”며 토로한 적이 있다. 공사 기간을 맞추지 못하면 그에 따른 손해는 건설사가 져야 하는데 정작 발주처인 미군이 의지가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라는 얘기였다.
이런 분위기는 2015년 상반기에 반전된다. 당시 미군들이 갑자기 건설사들에 ‘공기를 맞추라’며 압력을 가해 하청업체 건설사 대표가 항의하다 자살하는 참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갑자기 ‘공기를 맞추라’는 미군의 입장 변화에 하청업체들은 난리가 났다고 한다.
미국은 결국 올초 연말까지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완료한다는 계획을 내년 말까지로 수정했다. 수정 이유에 대해 ‘일부 건설사 부도로 인한 연기’라고 발표해 하청업체들의 공분을 샀다는 후문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인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는 2014년 10월 23일 당시 한국이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전작권 전환이 늦춰지면서 미군은 전작권을 행사하는 한미연합사의 용산 잔류 논리를 획득했다.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에서 조건이란 ▷안정적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 안보 환경 ▷전작권 전환 이후 한미연합 방위 주도 가능한 한국군 핵심 군사능력 구비 및 미국의 보완과 지속능력 제공 ▷국지도발과 전면전 초기 단계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필수 대응능력 구비 및 미국의 확장억제 수단과 전략자산 제공 및 운영 등 3가지를 말한다.
한국은 이에 따라 북한 위협에 대비한 킬체인(도발원점 선제타격체계), KAMD(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 구축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를 보유해야 전작권 전환을 위한 조건이 갖춰지기 때문.
킬체인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 KAMD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후 필요한 대응능력이다.
킬체인은 정찰위성, 정찰항공기, 정밀타격용 유도미사일 등이 필요하고, KAMD는 장거리레이더, 패트리엇, 국산 중거리지대공유도미사일(M-SAM), 국산 장거리지대공유도미사일(L-SAM) 등의 요격미사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는 향후 7조9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무기를 직접 만들거나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수입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