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세계 최초로 양산·출하했다는 소식은 반가운 성과다. 삼성전자는 6세대 D램과 첨단 파운드리 공정을 결합해 국제 표준을 웃도는 성능을 구현했다고 한다. 삼성만이 시도할 수 있는 공정 조합으로, 데이터 처리 속도는 직전 세대인 HBM3E보다 20% 이상 향상됐다는 평가다. HBM 시장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온 상황에서, 기술 주도권을 되찾을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SK하이닉스 역시 HBM4의 본격 출하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미국에서 ‘치맥 회동’을 갖고 HBM공급과 인공지능(AI) 사업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와의 협력으로 초기 생산 물량은 거의 소진됐다. 미국 마이크론이 엔비디아의 성능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차세대 HBM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양강 체제로 굳어진 모습이다. 인공지능 수요 급증 속에 공급 여력이 제한되면서 K반도체의 위상은 한층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안주할 때가 아니다. 중국 최대 D램 기업 창신메모리(CXMT)가 HBM3 대규모 양산에 나서면서 한·중 반도체 기술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에서는 약 4년으로 평가되던 격차가 HBM3에서는 3년 수준으로 줄었다. 중국 국가 차원에서 양산 체제를 밀어붙이는 전략 덕에, 수율이 낮더라도 보조금과 정책 지원으로 생산을 늘리며 기술력을 높이고 있다. 글로벌 정보통신 기술기업들 사이에서는 공급 불안을 이유로 중국산 메모리 채택을 검토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기술력에 대규모 생산 능력과 가격 경쟁력이 결합하면 시장 판도는 순식간에 뒤바뀔 수 있다.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반도체 고도화가 시급하다. 글로벌 산업 경쟁 구도에서 한국이 중국보다 확실한 경쟁력을 유지하는 분야는 이제 반도체뿐이다.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반도체가 흔들리면 경제도 급속히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뒤늦게 처리한 반도체 특별법조차 직접 지원은 축소됐다. 전력·용수 등 인프라 지연, 경직된 노동 규제, 지역 이해관계에 발목 잡힌 클러스터 조성도 그대로다. 주요국들이 국가자원을 총동원해 속도전에 나서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 상황은 답답하다.
국가가 더 앞장서야 한다. 신속한 지원은 물론, 차세대 HBM 이후를 겨냥한 초고집적 메모리, 저전력·고신뢰성 반도체, AI 연산 구조를 바꾸는 신개념 반도체 개발에도 기업과 힘을 모아야 한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