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AI칩 1.8만개 사우디에 공급

수천조 투자 중동에 ‘AI칩’으로 화답

‘기술패권’ 겨루는 中 옥죄기 연합전선

바이든 규제 폐기…국가별 협상 무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동 순방을 계기로 ‘인공지능(AI) 외교’를 가속화하고 있다. 중동 순방 중인 미국에 천문학적인 돈을 약속한 ‘오일 머니’ 국가에 트럼프 행정부가 최첨단 엔비디아 AI칩으로 보답하는 등 미국이 자국의 AI 기술력을 외교와 통상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기존 AI칩 수출통제 규제를 폐기한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교역상대국과의 협상에서 AI 반도체를 무기로 삼아 대미 투자 등을 요구할 가능성도 커졌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지역 AI기반 시설 구축은 한층 더 탄력을 입을 예정이다. 중동은 전통적인 석유산업에서 벗어나 막대한 오일머니를 발판으로 ‘AI 강국’ 도약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대통령이 순방 중인 사우디에 대규모 AI칩 공급을 발표했다.

▶트럼프 중동 순방 중 엔비디아 AI칩 계약 발표 =황 CEO는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미국 투자 포럼’에서 현지 기업 ‘휴메인’과 최신 AI 칩 공급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황 CEO는 자사의 최신 AI 칩 중 하나인 GB300 블랙웰 칩을 휴메인에 1만8000개 이상 판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칩은 사우디아라비아 내에 건립되는 500MW(메가와트)급 데이터센터에서 탑재될 예정이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국가”라며 “이 에너지를 활용해 대규모 엔비디아 AI 슈퍼컴퓨터들을 통해 AI 공장 같은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휴메인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소유로, AI 모델 개발 및 데이터센터 기반 시설 구축을 추진한다. 또 이 기업은 장기적으로 수십만 개의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도입할 계획이어서 엔비디아가 공급하는 AI 칩은 많이 늘어날 전망이다.

마지막 순방국인 UAE에는 더 많은 AI칩 관련 발표가 나온다는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엔비디아 칩 100만개 이상 수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해당 방안이 추진되면 매년 50만 개의 최첨단 엔비디아 AI칩이 수출된다”며 “이 중 20%는 G42에, 나머지는 걸프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미국 기업에 간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챗GPT 운영사인 오픈AI 역시 UAE 내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을 검토 중”이라며 “아직 최종 확정은 아니며, 트럼프 대통령이 16일 UAE를 방문할 때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AI칩 규제 앞두고…천문학적 대미투자 중동에 길 열어준 트럼프=미국이 중동 국가에 ‘통 큰 선물’이 이어진 데는 이들 국가가 대미 투자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사우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올해 초 향후 4년간 6000억달러(약 850조원)를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UAE도 지난 3월 10년에 걸쳐 1조4000억달러(약 1842조원) 투자를 약속했다. 특히 아부다비 국부펀드 무바달라는 최근 인텔의 자회사 알테라 지분을 인수하고, MS와 15억 달러 규모의 AI 동반관계를 체결하는 등 미국 기업과의 협력을 늘렸다.

특히 UAE는 지난해 AI 전용 기술 투자회사인 MGX를 설립해 샘 올트먼 오픈 AI 최고경영자(CEO)와 ‘AI 반도체 프로젝트’ 투자 계약을 논의하기도 했다. MGX는 아부다비 국부펀드인 무바달라와 국영 AI 기업인 G42가 함께 만든 투자회사로, 최근까지 미국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AI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AI 기술 개발의 핵심 소재라 할 수 있는 엔비디아 최신 AI칩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중동 국가는 난처한 상황에 놓인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모두 조 바이든 정부가 수출 제한국으로 이달부터 수출통제를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전 세계를 3단계로 나눠서 동맹국으로 분류되는 1단계 국가를 제외하고는 최첨단 AI칩 수입을 제한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중국의 우회 수출국으로 지목된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는 2단계로 분류돼, 2027년까지 AI칩 확보가 어려워질 예정이었다.

▶‘국가전’ 치닫는 최첨단 AI칩, 트럼프 외교 협상 지렛대 가시화=따라서 이번 트럼프의 중동 순방은 AI 강국을 노리던 중동 국가들에 큰 호재가 될 전망이다. 반대로 미국 입장에서는 다른 국가들에 AI 기술 패권을 활용한 AI 외교의 선례를 남기게 됐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AI칩 수출통제 문제를 상호관세 발표 이후 이뤄진 주요국 간의 통상 협상과 연계될 수 있다고 짚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동 순방으로 페르시아만 핵심 동맹국들이 AI 강국 야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길을 열고 있다”고 평가했다. CNBC 방송은 “세계 각국이 챗GPT와 같은 첨단 AI 소프트웨어 학습과 운용을 위해 최신 칩을 경쟁적으로 확보하려는 가운데 엔비디아 칩이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적 협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김빛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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