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더 강하고 빠른 미·중 무역전쟁
트럼프 “결국 중국 협상할 것” 자신감에도
中 “정세 어떻게 변하든 올 5% 성장 확신”
브릭스 11개국 등과 반미전선 구축 의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인 29일(현지시간)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은 예상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가 집권 1기 때처럼 중국에 선전포고를 하자, 중국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맞불 관세로 받아치면서 ‘치킨게임’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중국은 협상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중국은 대외 불확실성 속에서도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인 ‘5% 안팎’ 달성을 자신했다.
▶오지않는 시진핑 전화…트럼프 계산 실패?=트럼프 2기 미·중 무역전쟁은 이처럼 예상보다 빠르고, 관세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기술 등 전방위로 대립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은 중국으로 들어가는 AI 반도체 기술을 틀어막으며 새로운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다. 직전 정부인 조 바이든 정부의 대(對)중국 AI 반도체 규제를 한 층 더 강화해 엔비디아 ‘H20’, 인텔 칩 등 저사양 AI 반도체 수출제한에 나섰다. 이에 중국 화웨이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칩 H100을 대체할 목표로 자체 AI 칩을 개발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엔비디아는 주가가 28일(현지시간) 3.6% 하락했다.
미국과의 갈등에도 중국은 경제성장률 5%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유지했다. 자오천신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부주임은 이날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올해 경제사회 발전 목표(경제성장률 5%)와 과제 달성에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관세 때린 美, 기다린 듯 받아친 中=미국과 중국 모두 관세전쟁에 사활을 걸면서 양국이 서로에게 부과한 관세도 전례없이 높아졌다. 미국 백악관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에 부과된 관세율은 총 145%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 10%를 부과하며 관세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관세 부과 근거는 중국산 펜타닐(좀비 마약)이 미국으로 유입되면서 미국을 악화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곧이어 중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인 3월 4일부터 대중 관세율을 기존 10%에서 20%로 올렸다. 중국 역시 미국산 농·축산물 740개 품목에 추가로 10% 또는 15%의 관세를 부과했다.
‘관세 주고받기’로 끝나는가 싶었던 미·중 무역전쟁은 상호관세가 등장하면서 격화했다. 상호관세 34%를 시작으로 양국은 관세율 올리기에 열을 올렸다. 중국도 동일 세율로 보복 관세를 부과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관세를 84%로 인상했다.
중국이 다시 동일 세율로 보복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 상호관세는 125%로 끌어올렸고, 결국 대중 관세는 145%까지 높아졌다. 중국도 지난 11일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 84%에서 125%로 올리는 관세 조정 고시를 발표하며 “의미없는 숫자놀음”이라고 비판했다.
▶대화냐, 단절이냐…트럼프, 남은 임기 어떻게=하지만 양국이 언제까지 높은 관세를 유지할 수 없는 만큼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례로 무역 협상을 담당하는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미·중 관세에 대해 “현재 관세 수준이 지속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빅딜(큰 거래) 기회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중국도 관세 일부를 철회하면서 대화 빌미를 만들고 있다. 중국은 최근 당국의 공식 발표 없이 슬그머니 메모리칩을 제외한 미국산 반도체 8종에 대한 관세 125%를 철회했다고 미 CNN이 지난 25일 보도했다. 이를 두고 미·중 양국이 관세 협상의 물꼬를 트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양국 간 물밑 협상이 이뤄지고, 2018년 때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만나 협상을 마무리하며 1기 때처럼 미·중 무역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반대로 현재의 갈등이 더욱 심해져 신(新) 냉전체제로 굳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한 품목 관세를 예고하고 있고, AI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기술 견제도 있어 상황이 누그러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양국 간의 경제 관계가 악화하면서 중국과 미국은 무역을 넘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냉전으로 향하고 있다”며 “양국은 독자적인 연합체를 형성하려고 한다”고 평가했다.
실제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신흥 경제국 연합체인 브릭스(BRICS)는 트럼프 미 행정부가 촉발한 ‘관세 전쟁’에 맞서 단합된 전선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브릭스 회원국 11개국은 2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외교장관 회의를 열어 이런 입장을 밝혔다.
29일까지 이틀간 일정으로 진행되는 이번 회의는 브라질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 등 11개 회원국 외교장관 또는 대표단이 참석했다.
이들 국가는 7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되는 브릭스 정상회의를 앞두고 사전에 조율한 의제를 점검하며 회원국 간 의견을 교환했다. 김빛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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