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에틸렌 생산량 이미 ‘공급과잉’
중국 생산능력, 연평균 17.6% 급증
대(對)중 수출 비중·기업 신용등급↓
![국내 석유화학 공장이 밀집된 여수 산업단지 제공. [여수시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3/12/news-p.v1.20250221.890404baef4b4a3489f65a2e62fa21f5_P1.jpg)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 대표 수출품. 한국은 세계 4위의 석유화학 강국으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 비중에서 자동차, 석유정제, 반도체의 뒤를 잇는 효자 품목이 석유화학 제품이다. 다양한 전후방 산업에 주요 중간재를 공급하는 국가기간산업이자, 에틸렌 등 다양한 기초유분을 전 세계에 내다팔며 세계 시장에서 한 몫을 해왔다.
그러나 대표 수출품인 만큼 해외 시장 의존도가 높고, 외부 환경 변화에도 극히 민감하다. 최근 들어서는 ‘호황과 불황의 등락조차 사라지고 있다‘는 비관론이 고조되고 있다. 앞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부진하다가도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 경기회복기(2009~2011년), 코로나19발 특수(2021년) 등으로 호황기를 누려왔다. 하지만 10년간 이어진 중국의 설비 증설은 시장 사이클을 아예 무력화하고 있다. 한때 한국 석유화학 기업의 최대 시장이었던 중국이 비관론의 중심이 된 것이다.
중국, 연내 자급률 100% 돌파 관측
12일 한국화학산업협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에틸렌 수요량은 1억8253만톤으로 에틸렌 생산 능력(2억2587만톤)에 달하지 못했다. 이미 세계적인 ‘공급 과잉’ 상황인 셈이다. 이는 중국 등에서 넘치는 공급이 큰 영향을 미쳤다. 앞서 2021년까지 전 세계 에틸렌 생산 능력이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그러나 2022년부터는 중국이 전체의 21.2%를 차지하며 미국을 제쳤다. 중국 석화 산업이 2010년대 초반부터 국가적인 지원을 받아 대규모 생산 설비 투자가 이뤄진 덕이다.
중국은 2019년 전 세계 에틸렌 생산 능력의 14.8%를 차지했는데, 2023년에는 그 비중이 23%로 급 성장했다. 해당 기간의 연평균 증가율은 17.6%에 달한다. 2023년 기준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5184만톤)은 자국 내 수요(5908만톤)를 전부 감당할 수 없었지만, 올해 안에 자급률 100%를 돌파하거나 이미 다다랐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공장 전경.[헤럴드경제DB]](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3/12/news-p.v1.20241224.4f3f6d5199c14ac582a589772abd7298_P1.jpg)
중국이 자국 내 수요를 충족시킨 후 다른 국가로 수출할 잉여 생산량이 늘수록 세계 시장의 공급 과잉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생산국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점도 자명하다. 국내 석화산업은 2023년 기준 전 세계 에틸렌 생산 능력 중 5.7%(약 1280만톤)를 차지, 세계 4위 수준이다.
아울러 중국의 자립으로 우리나라는 수출 일감도 잃고 있다. 국내 석화산업은 대중(對中) 수출 의존도가 상당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0~2019년까지 10년간은 전체 석화제품 수출액의 43.9%가 중국으로의 수출액이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전체 석유산업 수출액 중 중국으로의 수출액 비중은 감소세다. 2021년 수출액 자체가 늘긴 했지만 이는 코로나19 영향이며 2023년에는 수출액이 전년 대비 15.2% 감소했다.
업황이 나빠지며 개별 기업들의 재무지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LG화학, 금호석유화학, 한화솔루션, 롯데케미칼 등 주요 4사 중 금호석유화학만 영업적자를 피하며 선방했다. 반면 지난해 LG화학은 석유화학 부문에서 영업손실 1360억원을 냈고 한화솔루션과 롯데케미칼 역시 각각 3002억원, 8948억원 적자를 냈다. 이 기간 한화솔루션은 적자전환했고 롯데케미칼은 3년 연속 적자였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최근 1년 사이 신용등급이나 등급 전망도 줄줄이 하락했다. 여천NCC, 한화토탈에너지스 등 신용등급이 하락했고, 올 상반기 정기 평가에서 잇따라 추가 등급이 하락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웹세미나에서 석유화학 산업에 대해 “중국의 생산 능력 확대에 따른 공급 과잉 상태 장기화로 수급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월 25일 오전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LG화학과 롯데케미칼에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공장 가동이 멈춘 가운데 생산공정에 투입된 원료를 태우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연합]](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3/12/rcv.YNA.20250225.PYH2025022510330006300_P1.jpg)
국제 정세에 부진…탄소중립 등 난제도 산적
중국발 공급 과잉 외에도 다양한 요인에 따른 산업 재편 압력이 커지고 있다. 특히 ▷국제 정세 ▷기후변화 및 온실가스 배출 감소 규제 등이 변수다.
우선 복잡한 국제 정세에 유가가 출렁이며 업황이 타격을 받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위기, 미중 무역 전쟁 등으로 유가가 널뛰면, 원재료 가격 급등으로 석유화학 제품 마진은 줄어든다. 이에 석화산업의 주요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나프타 가격)는 3년 가까이 손익분기점을 밑돌고 있다. 통상 손익분기점은 톤당 300달러 수준으로 여겨진다. 2010년대 중반에는 톤당 연평균 600달러 이상의 마진을 기록한 적도 있는데, 2022년 이후로는 톤당 300달러를 밑돌고 있다. 이처럼 국제 유가가 오르는 가운데 공급 과잉이 맞물리며 가격 경쟁력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외에 탄소중립, 온실가스 배출 감소 규제 등도 도전과제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에서 제품 생산에 쓰이는 연료와 원료는 모두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꼽힌다. 정부가 탄소중립 목표 실현을 위해 각종 규제와 정책을 수립하고, 기업들은 사업 및 제품구조 변화를 고심 중이다.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친환경 기술 도입, 공정 혁신을 추진하는 한편 원가 절감까지 이뤄내야 하는 숙제가 내려진 셈이다.
ke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