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요즘 한국이 처한 상황이다. 국제 정치 질서와 경제 흐름에서 ‘난 누구, 여긴 어디’의 느낌이다. 얼마 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 다녀온 이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속내가 궁금했다. 우려 섞인 말이 돌아왔다. 그는 미 행정부가 한국의 리더십 교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면서 한국의 정치 상황이 정리되면, 북한에 특사를 보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공화당 관계자의 전언이라고는 했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현 야당에 대한 부정적 기류도 있는 듯하다고 했다. 대북 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배제되는 ‘코리아 패싱’이 우려되는 대목이었다. 필자의 머릿속을 내내 맴돌던 그 걱정이 요즘 더 커지고 있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달 말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면담에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설전을 벌이고 있다. [AFP]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설전을 벌이고 있다. [AFP]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장을 요구한 젤렌스키에 트럼프는 미국의 일방적 종전 구상을 압박했다. 한마디로 ‘(우크라이나) 안보는 모르겠고, 전쟁 지원대가로 자원개발 이익을 미국에 주고, 일부 영토는 러시아에 양보하고 전쟁을 끝내자’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패싱’이다. 젤렌스키는 반발했다. 여파는 컸다. 트럼프는 4일 군사원조 중단, 대러 제재 완화 추진이라는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이다. 하지만 여기에만 기댈 수 없다. 한국을 둘러싼 러시아, 중국, 북한과의 관계에서 ‘우크라이나식 패싱’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특히 미국에 이익이 되는 사안이라면 말이다. 통상 등 경제 분야에서도 미국이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트럼프 특유의 협상용 빈말이 아니었다. 특히 캐나다는 한국처럼 미국의 동맹국이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기도 하다.

러시아 전통 목각인형 마뜨료쉬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미지가 구현되어 있다. [AP]
러시아 전통 목각인형 마뜨료쉬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미지가 구현되어 있다. [AP]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미국과 지금의 미국은 완전히 다르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관용과 개방’의 매혹적인 강자가 아니라,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응징과 폐쇄’로 군림하는 강자가 됐다. 최소한 트럼프 재임 4년 동안엔 더욱 그럴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각종 정치·경제 정책들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이익은 미국이 취하고, 부작용은 전 세계가 함께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비유하자면 동네 깡패 집단의 폭력으로부터 동생들을 지켜주던 형이 되레 그들의 잘못을 묵인하고 동생들에게 ‘삥’을 뜯는 이런 황당한 상황에서 말이다.

미 캘리포니아의 한 건축자재 판매장인 홈디포에서 3일(현지시간) 미국사 원목 자재가 판매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부터 캐나다,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예정대로 부과하겠다고 3일 밝혔다.  [AFP]
미 캘리포니아의 한 건축자재 판매장인 홈디포에서 3일(현지시간) 미국사 원목 자재가 판매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부터 캐나다,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예정대로 부과하겠다고 3일 밝혔다. [AFP]

안타깝게도 현시점에서 시원한 해답은 없다. 트럼프 주도의 정치·경제 질서 흐름 속에 한국이 주도권을 잡기는 쉽지 않은 형국이기 때문이다. 가급적 미국의 비위를 맞추며 시간을 벌되,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정치적, 경제적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특히 대북 문제에 있어서 ‘코리아 패싱’만은 막아야 한다. 정치 외교 분야에선 대중 전략에 있어서 동맹인 한국의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통상 등 경제적 이슈에서도 한국 산업의 장점을 최대한 어필해야 한다. 조선 분야처럼 미국이 고개 숙여 요청할 만한 차별화된 기술력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내 정치적 안정과 혁신 기술력 확보를 위한 지원은 필수 요건이다.

트럼프 시대의 대미 관계에 있어서 ‘낙관’은 금물이다. 트럼프의 각종 압박은 협상용 허언이 아니라 현실화하고 있다. 트럼프를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 흐름을 냉철히 분석하고, 모든 경우를 대비한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반도체 주 52시간제 예외’ 같은 필수적 지원 정책에 한국의 정치적 역량이 소진되고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여·야·정이 똘똘 뭉쳐 국정 협의를 해나가도 부족한 상황이다. ‘트럼프 시대’는 각국이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의 다른 말임을 뼛속 깊이 명심해야 한다.

권남근 헤럴드경제 뉴스콘텐츠부문장 겸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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