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지난 1992년 7월 1일, 당시 가장 권위 있는 음악 순위 프로그램이었던 KBS ‘가요톱10’에서 후일 ‘문화대통령’이라고 불리는 가수의 취임식이 열렸다.
1992년 7월 첫째 주 ‘가요톱10’의 정상을 차지한 곡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였다. 이후 ‘난 알아요’의 기세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난 알아요’는 7월 다섯째 주까지 내리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골든컵’을 안겼다. 이로써 데뷔 반년도 되지 않은 신인은 젊은이들의 영웅이 됐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 3월 23일에 데뷔 앨범을 발매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방송 출연은 그로부터 6일 뒤인 3월 29일 KBS ‘젊음의 행진’이었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방송은 4월 11일에 출연한 MBC ‘특종 TV 연예’였다. 이 방송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을 심사한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광훈 작곡가는 “리듬은 좋으나 멜로디가 약하다”, 양인자 작사가는 “노랫말도 새로웠으면 좋았을 것”, 방송인 이상벽은 “섬세한 노래가 격렬한 동작에 묻혔다”고 평했다. 평점은 10점 만점에 7.8점이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의 박한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태지와 아이들은 단숨에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기성세대인 심사위원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준 낮은 점수와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묘하게 대비됐다. 이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시대의 변화를 알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6년 1월 22일 해체 전까지 4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90년대 가요계를 넘어 대중문화계 전반에 폭풍을 몰고 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발라드와 트로트를 중심으로 흘러가던 가요계의 질서를 뿌리째 흔들었다. ‘난 알아요’의 ‘가요톱10’ 정상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보여줄 ‘문화혁명’의 서막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더 많은 앨범 판매고를 올린 가수는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기존 질서를 뒤흔든 가수는 이후에 없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이름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영향력은 현재진행형이다. 2015년 무대를 누비는 수많은 가수들에게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