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AIIB 37억불 분담금에도 홍기택 하차 망신 교훈잊고 검증도 안된 총선낙선자등 기관장·감사자리 낙하 준비 권력층 입김에 윤리법 뒷전

국제기구에 ‘낙하산’으로 내려간 인사가 6개월만에 중도 하차해 국제망신을 자초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말까지 60개에 육박하는 공공기관 수장의 교체를 앞두고 또 다시 낙하산 망령이 관가와 정치권을 떠돌고 있다.

현정부의 임기 4년차 후반기를 맞아 정권 교체 직후에 선임돼 교체시기를 맞았거나 지난 4월 총선에 출마하면서 대표가 공석인 공공기관들이 줄줄이 새 대표를 선임할 예정이다. 연말까지 이에 대한 공모가 진행되면서 사상 최대의 ‘큰 장’이 서는 것이다.

19일 본지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를 검색해 집계한 결과 올 연말까지 57개 공공기관의 대표가 공석이거나 임기가 만료돼 연말까지 공모 절차가 진행된다.

특히 9월과 11, 12월에는 10개 이상의 공공기관 대표를 새로 선임해야 한다.

정부는 공공기관 인사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을 비롯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과 핵심 권력층의 입김으로 법령이 무력해지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한 부작용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가 선임 반년만에 중도 하차한 것은 ‘낙하산’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홍 전 부총재는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다 현정부와 인연을 맺어 대통령직 인수위원, 산업은행 회장에 이어 올 2월엔 AIIB의 한국몫 부총재로 전격 발탁됐으나, 대우조선 지원에 대한 정권실세 개입 발언 등으로 파문을 일으키다 결국 중도하차했다. ▶관련기사 6면

홍 부총재의 중도하차는 한국이 37억달러(약 4조3400억원)의 분담금을 내고 얻은 자리가 날아갔다는 차원 뿐만 아니라, 한국의 부실기업 관리 및 낙하산 인사의 실상을 국제적으로 알리면서 한국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는 점에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기 위해선 이미 마련된 공공기관 대표와 임원의 선임 절차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며, 특히 정치권과 권력 핵심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정부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자들의 재취업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공직자윤리법을 개정(일명 관피아 방지법)했지만 관료 출신 공기업 CEO 비중은 여전히 높은 상태다. 올 2월 CEO 스코어의 조사 결과 288개 공공기관장 가운데 관료출신이 36.1%로, 2014년 11월말 39.2%에서 불과 3%포인트 낮아진 데 머물렀다.

정부는 또 고위공무원들이 퇴직 후 재취업할 경우 인사혁신처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으나, 승인 비율이 2014년 하반기 71.3%에서 지난해 87.8%, 올 상반기에는 91.9%로 높아져 재취업 심사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총선 낙선자를 포함해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정치인들이 기관장 또는 감사ㆍ사외이사 등으로 내려오는 경우다. 이에 국회의원이나 정당 지역위원장 등 정치인이 사임한 후 3년 이내에 공공기관장 자리를 차지할 수 없도록 하는 ‘낙하산 금지법’ 등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낙하산을 근절하려면 이런 법령보다 권력층의 의지가 필수적이란 지적이다.

이해준ㆍ배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