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최장집권자인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22일 두차례 국영TV에 등장했다.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져 일촉즉발의 긴박한 상황에서 카다피의 연설이 예고되자 전세계가 긴장했다. 그러나 카다피는 차에 탄 채 회색 우산을 펼쳐들고 “길 잃은 개들(stray dogs, 자신의 망명설 등을 보도한 서방언론)의 방송채널을 믿지 말라”며 국영TV에 20초간 ‘말’을 하는 것으로 그쳤다.

말 많기로 유명한 카다피로선 의외지만 자신의 짧은 말을 통해 자신의 건재를 알린 셈이다. 그러나 2번째 ‘연설’에선 “마지막 피 한방울이 남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연단을 내리치기도 하고, 자신의 통치철학을 집대성한 저서인 ‘그린 북(Green Book)’을 읽기도 하면서 원고없이 75분간이나 연설을 이어갔다.

42년 철권통치가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우산을 들고 20초간 등장하는 장면은 어색하기 그지 없지만 카다피는 ‘중동의 미친 개’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명하다. 독재자로 악명 못지 않게 기행과 돌발발언으로 국제적인유명인사다.

작년에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에는 카다피에 대해 “내연관계라고 알려진 우크라이나 출신의 관능적인 금발 간호사에게 매료돼 있어 그녀 없이는 여행도 할 수 없다”고 평했다.

이 때문일까. 리비아에는 동유럽 출신 간호사들이 많이 근무했고, 이들을 위한 외국인 전용 해수욕장도 개설하기도 했다.

“카다피는 변덕이 심하고 아주 이상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또 물 위로 비행하는 것을 싫어하고 숙소는 1층에만 머무르려 하고, 의외로 스페인 플라멩코 춤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다피는 민소매 차림의 여성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니기도 했다. 미국의 피격을 우려해 비행기 이동을 자제하고, 비행기를 사용할 경우 여러대가 민간 비행기와 한꺼번에 비행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요격을 피하기도 했다.

카다피의 기행으로 첫 손꼽히는 사례는 2009년 유엔총회 연설.사상 처음으로 유엔총회장에 참석한 카다피는 15분 할당된 연설시간을 90분이나 끌며 황당한 발언을 했다. 아프리카 1000년 왕국의 이름으로 서방세계에 72조7700억 달러를 보상하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유엔헌장을 찢기도 하면서 안전보장이사회를 테러이사회라고 불려야 된다고 했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오바마가 아프리카의 아들로 영구히 미국 지도자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발언, 총회장을 폭소로 몰고 갔다. 신종플루는 누구가 개발한 무기란 말도 했다.연설에 앞서 유목민인 베두인족 전통에 따라 대형 천막을 설치해 숙소로 사용하려고도 했다.

2009년 카타르에서 열린 아랍 정상회의에서도 사우디의 압둘라 국왕을 “영국산 제품이자 미국의 협력자”라고 몰아세워 장내를 술렁이게 한 뒤 “나는 국제적인 지도자이자 아랍 지도자 중 중진이며, 아프리카에서는 왕 중의 왕일 뿐 아니라 무슬림의 이맘(종교지도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자신을 아프리카의 왕중왕이라고 스스로를 일컫고 있지만 카다피에게 운명의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