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 등 혐의 적용

1·2심서 모든 혐의 유죄, 징역 4년

대법, 불법촬영 부분은 무죄 취지로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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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연합]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연인이 나체로 샤워하는 모습을 영상통화 중 몰래 녹화했더라도, 불법촬영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람의 신체를 ‘직접’ 촬영한 게 아니라 단순히 이미지 영상을 ‘녹화’한 것이므로 촬영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엄상필)는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스토킹처벌법 위반, 협박, 주거침입미수 등 혐의를 받은 외국인 A씨에 대해 이같이 판시했다.

대법원은 A씨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4년 실형을 선고한 원심(2심) 판결에 대해 “법리를 오해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A씨의 혐의 중 불법촬영(카메라 등 이용 촬영) 부분까지 유죄로 선고한 것은 잘못이라며 무죄 취지로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A씨와 피해자는 모두 외국인으로 2020년 8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사귀던 사이였다. A씨는 교제 당시 피해자 몰래 영상통화 중 피해자가 나체로 샤워하는 모습을 녹화한 혐의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헤어진 이후 이를 SNS에 올린 혐의, 스토킹한 혐의, 폭행한 혐의, 피해자의 차량을 부순 혐의 등이 적용됐다.

1심과 2심은 A씨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징역 4년 실형을 선고했다.

1심을 맡은 수원지법 15형사부(부장 이정재)는 지난 2월, 이같이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A씨)은 피해자와 헤어진 뒤 피해자 몰래 보관한 나체 사진을 유포할 듯이 협박했고, 실제 온라인에 유포했다”고 밝혔다.

이어 “죄질이 상당히 좋지 않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진을 피해자의 아들에게도 보내 피해자가 상당한 정신적 고통과 성적 불쾌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의 배경을 설명했다.

A씨는 “형량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는 이유로, 검사는 “형량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하지만 2심의 판단도 1심과 같았다.

2심을 맡은 수원고법 1형사부(부장 문주형)는 지난 6월, 양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징역 4년 실형 선고를 유지했다.

2심 재판부는 “1심의 양형은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 내에 있다고 보인다”며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판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1·2심과 달랐다. 대법원은 원심(2심)이 불법촬영 부분까지 유죄로 선고한 것은 잘못이라고 봤다.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불법촬영)는 카메라 등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의사에 반해 촬영했을 때 성립한다.

대법원은 해당 조항을 살펴봤을 때 “촬영의 대상은 ‘사람의 신체’라며 “신체 그 자체를 직접 촬영하는 행위만이 촬영에 해당하고, 신체 이미지가 담긴 영상을 촬영했을 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A씨)이 피해자와 영상통화를 하며 피해자가 나체로 샤워하는 모습을 휴대전화 녹화기능을 이용해 녹화한 행위는 피해자의 신체 그 자체가 아니라 휴대전화에 수신된 신체 이미지 영상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A씨가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원심(2심)은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며 “원심 판결엔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으므로 파기하고, 다시 판단하도록 수원고법에 돌려보낸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이 판결을 확정하는 대신 파기하면서 A씨는 4번째 재판을 받게 됐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A씨는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받고, 양형도 다소 감형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