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불호 캐릭터였다면 내탓

국극 무대 촬영에 가장 공 들여 

무대 하나당 7~10일씩 촬영해

정년이
드라마 ‘정년이’의 정지인 감독과 배우 김태리 [tvN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평점 9.97점을 기록한 인기 웹툰이 TV 안으로 들어오자 시청률도 날개를 달았다. 1회 당시 4.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한 드라마는 16.5%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드라마의 인기에 유명무실해진 여성국극은 다시 소환됐다. tvN 드라마 ‘정년이’ 이야기다.

‘정년이’의 연출을 맡은 정지인 감독은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시청자 반응 중에 ‘집에서 이런 걸 돈 안 주고 봐도 되냐’는 댓글이 참 인상적이었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웹툰을 찢고 나온 ‘정년이’는 배우 김태리를 만나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로 그려졌다. 정 감독 역시 “김태리가 쏟은 열정과 노력이 우리 작품을 떠받치는 큰 원동력”이라고 했다.

하지만 워낙 인기가 많았던 원작을 바탕으로 했던 만큼 팬들의 비판을 피하진 못했다. 드라마 방영 동안엔 정년이 캐릭터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국극단 황태자(문옥경)의 ‘원픽’으로 오디션을 보고 입단한 금수저, 기존의 질서를 무시하고 자기 주장만 하는 미성숙한 아이, 더 좋은 소리를 찾겠다며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은채 스스로를 혹사하는 고집불통 같은 면모가 두드러지면서다. 정 감독은 “호불호가 갈릴 것은 예상했다”고 고백한다.

“어떤 경지에 도달하길 원하는 간절한 열망은 이해를 구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아끼는 이에게서 스스로의 재능이 부정당하는 경험은 일종의 절망을 불러일으키고, ‘최고가 되겠다’는 한 길만 보던 정년이 같은 사람에게 감정적인 트라우마로 작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촬영기간 동안 배우들과는 예술가들이 가지는 절망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정 감독은 “어떤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건 배우들 역시 갖고 있는 숙명”이라며 “그것을 관찰하고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건 연출자의 몫인데, 지나친 불호가 많았다면 좀 더 섬세하게 연출하지 못한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고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드라마 정년이
tvN 드라마 ‘정년이’ [tvN 제공]

드라마 속 명장면은 네 편(‘춘향전’, ‘자명고’ ‘바보와 공주’, ‘쌍탑전서’)의 국극이었다. 각각의 극중극은 드라마가 구현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공연 무대를 보여줬다. 정 감독은 “국극 무대는 배우와 스태프가 총력을 기울여 공들인 장면”이라고 했다.

사실 현장성이 두드러진 공연 무대를 영상으로 담아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팬데믹 동안 극장 문이 닫히며 국내 공연계에선 ‘무대의 영상화’에 공을 들였지만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공연계 관계자들은 당시를 떠올리며 “영상 쪽에선 공연 문법을 알지 못하고, 공연계에선 영상 문법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 수준 높은 공연 영상을 만들기 어려웠다”고 입을 모은다.

‘정년이’ 속 극중극은 이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양쪽 모두의 장점을 살렸다. 무대 생생한 질감과 드라마가 보여줘야 할 배우들의 눈빛과 표정, 무대 밖 상황 등 영상 매체의 특수성을 조화롭게 편집해 극적 묘미를 살렸다.

국극 촬영은 각 작품마다 7~10일 정도 걸렸다. 주 2~4회의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 나머지 날엔 배우들은 연습을, 스태프는 장면 구현을 위한 회의를 했다. 정 감독은 “카메라 리허설과 드레스 리허설을 본 촬영에 앞서 하루씩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배우들의 무대 동선 확인, 카메라와 장비 동선, 조명 세팅, 의상과 분장 헤어 세팅 등을 보면서 본 촬영에서 수정 보완할 것들을 미리 확인했다”고 돌아봤다.

클래식이나 뮤지컬처럼 소위 말하는 ‘시체 관극’ 장르가 아니라는 점에서 관객들의 추임새와 뜨거운 반응을 넣는 것도 관건이었다. 그런 이유로 본 촬영에선 무대 위주의 촬영과 관객을 포함한 촬영, 그리고 CG용 관객 소스 촬영을 각각 나눠 진행했다.

정년이
드라마 ‘정년이’ 정지인 감독(왼쪽)과 문옥경 역의 정은채 [tvN 제공]

극중극으로 선보였지만, ‘정년이’는 잊혀졌던 우리 예술을 무대에서 충실히 재현했고, 꽤 긴 시간을 국극 공연에 할애했다. 물론 고민도 적지 않았다. 정 감독은 “화면이라는 첫 번째 장막을 넘어 무대라는 두 번째 장막을 뚫고 볼 수 있는 시청자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드라마 속 캐릭터가 무대에서 한 번 더 극중극 캐릭터를 덧입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이었다”고 했다.

“(긴 분량이었지만) 이 정도의 길이도 납득시키지 못하면 앞으로 드라마가 보여주는 모든 공연 내용을 납득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한 도전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무모할 수도 있었죠. 그럼에도 한 때 많은 이들의 가슴을 뛰게 했지만 어느덧 잊혀진 이 장르가 최고의 여성 배우들에 의해 다시 한번 시청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싶었습니다.”

여성국극의 번성하게 된 배경엔 시대적 특수성과 아픔이 함께 한다. 한국전쟁 전후 젊은 남성들이 전쟁터로 떠났고, 여성들은 가장이 돼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무대에선 남성 역을 해야할 예인들이 필요했다. 그 시기 재능있는 여성 배우와 소리꾼들을 통해 국극은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여성국극 1세대로 1951년 광주 여성국극동지사에 입단, 현재도 무대에 오르고 있는 조영숙(90) 명인이 대표적이다.

“국극은 당시 관객들이 현실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던 최고의 오락거리 중 하나였어요. 무대의 커튼이 열리는 순간, 마치 놀이공원에 처음 입장하는 듯한 기대감과 흥분을 시청자에게도 주고 싶었죠. 지금도 조영숙 선생님과 제자들은 아직 여성국극의 명맥을 잇고 있어요. 이 드라마가 여성국극 더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미약하나마 도움이 됐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