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일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과 혐연
브람스부터 베토벤까지…사이먼 래틀의 선택
그는 한계를 몰랐다. 여기가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할 때, 다시금 벽을 깨고 한 차원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올 한 해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새로운 우주를 만났다. 오래도록 머물던 세계를 뛰어넘어, 미지의 우주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 돌아왔다. 조성진이 찾은 피아노 언어는 티끌 한 점 없이 투명했고, 경이로울 만치 정교했다. 아름다운 완벽에 다가선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세계적인 지휘자 사이먼 래틀을 만났다. 사이먼 래틀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이어 런던 심포니를 거쳐 이번엔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한국을 찾았다. 취임 이후 맞는 첫 아시아 투어의 단독 협연자는 조성진. 래틀은 각기 다른 세 악단과 한국을 찾을 때마다 언제나 조성진을 선택했다. 이번엔 두 번의 한국 연주를 비롯해 아시아 투어까지 함께 한다. 래틀은 조성진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연주자”라며 “더 나은 연주를 위해 선택했다”고 말했다.
두 번의 한국 공연은 사이먼 래틀과 조성진의 빈틈없는 호흡을 ‘직관’하는 시간이었다. ‘천생연분’, ‘영혼의 단짝’, ‘소울 메이트’, ‘지음지기’…. ‘절친한 사이’를 일컫는 모든 수사를 총동원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완전한 균형을 이룬 무대였다. 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는 기분이랄까.
한국에서 이어진 두 번의 공연은 각기 다른 레퍼토리로 구성했다. 첫 날(11월 20일ㆍ롯데콘서트홀) 공연은 모두 브람스였다. 브람스 협주곡 2번을 조성진과 함께 연주했고, 2부엔 브람스 교향곡 2번을 들려줬다. 둘째 날(11월 21일ㆍ롯데콘서트홀)은 베버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이었다. 조성진과 함께 하고 있는 두 곡의 공통점을 굳이 꼽자면 모두 음계가 내림 나장조라는 점이다.
래틀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조성진은 무척이나 잘 맞는 대화 상대였다. 브람스로 나눈 대화가 최고의 음악가들이 만나 나눈 진지한 ‘공적 대화’였다면, 베토벤으로 이어진 대화는 절친들의 가벼운 수다 같았다. 베토벤 협주곡 2번에선 래틀의 총애를 받는 조성진의 재기발랄함을 만날 수 있었다.
첫날은 프로그램의 구성부터 조화로웠다. 조성진은 20대부터 서른 이후의 연주 활동을 고민해왔다. 그는 “30대는 거장도 아니고, 더이상 젊은 연주자도 아닐 테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브람스 연주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물론 2년 전부터 이미 브람스를 연주했기에 “미래에 뭘 하겠다는 것을 섣불리 말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도 최근 들려줬다.
이날 만난 연주는 조성진이 마주한 ‘서른의 브람스’였다. 워낙 ‘난곡’으로 꼽히는 브람스 협주곡 2번은 거대한 스케일로 오케스트라와의 긴밀한 대화가 두드러지는 곡이다. 특히나 브람스 작품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다양한 변화를 담고 있다.
풍성한 호른 위로 피아노가 찬연하게 내려앉으면 음악은 시작된다. 아르페지오의 서정적 이야기가 시작되는가 싶을 때 조성진은 명료하고 단단한 타건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본격적인 대화의 포문을 연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는 어느 한쪽으로의 쏠림 없이 ‘힘의 균형’을 이뤘다. 오차 없이 주고받는 악절들은 래틀의 이야기처럼 오감을 자극하는 ‘테니스 랠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조성진의 브람스는 총천연색이었다. 찬란한 가을 햇살처럼 부서지는 현의 선율 위를 은구슬처럼 또르르르 구르다가도, 다부진 타건을 폭격처럼 쏟아냈다. 피아니스트와 악단은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이 레이스를 이어갔다. 맹렬하진 않았지만, 속도감이 느껴지는 랠리는 짜릿한 쾌감을 안겼다. 3악장은 온전한 가을이었다. 애수를 묻힌 아름다운 첼로의 선율로 시작해 겹겹이 소리를 포갠 현의 짙은 정서가 내려앉았다. 그 뒤로 티없이 깨끗한 피아노가 반짝거리며 고개를 내밀면 고순도의 아름다움에 벅찬 감정이 밀려든다. 춤을 추듯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4악장에 이르기까지 피아노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날 조성진은 완전무결하고 정교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피아노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논리를 갖춘 글이었고, 단 하나의 오탈자도 찾을 수 없는 한 권의 책이었다. 그의 음색은 맑고 순수했지만, 그의 음악은 범접할 수 없는 완벽함으로 무장했다.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이어질 때의 박자 감각은 면도날 만큼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고, 완벽한 음정을 찾아 내리 꽂는 터치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탄력을 부여했다.
시시각각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오케스트라 안으로 어우러져 목관 악기 소리를 만들어가는 장면 역시 ‘킬링 포인트’였다. 래틀은 시종 조성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아 보냈다. 앙코르는 슈만의 ‘숲의 정경’ 3악장 ‘고독한 꽃’이었다. 서정으로 채워진 무대는 한숨조차 사치였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은 조성진이 이번 시즌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연주 중 하나다. 앞서 지난달 15일 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하는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도 3번을 연주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조성진은 찰랑거리는 머리카락마저 음표가 된다. 한 음 한 음 허투루 연주하는 법이 없는 그의 소리는 늘 새롭다.
때때로 조성진은 끊임없이 자신만의 ‘이상적 음색’을 찾아나서는 유미주의자처럼 다가온다. 그의 피아노는 더이상 좋은 소리는 없다고 생각할 때 더 나은 소리를 들려주고, 하나의 곡 안에서도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여러 색깔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번 연주 역시 ‘소리 사냥꾼’의 여정처럼 다가왔다.
넬손스가 이끌던 빈필과의 연주에선 시종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음색을 들려줬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은 래틀과 만난 2번에선 수십 개의 가면을 바꿔쓰는 변검 배우처럼 종잡을 수 없는 다채로움을 채웠다. 래틀이 이끄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특히나 죽이 잘 맞았다. 쉴새없이 티키타카를 이어가도 언쟁 한 번 없는 친구인 탓에 조성진은 이 안에서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다채로운 음색으로 발현됐다.
2악장에서 그는 자기 안의 완벽을 추구해가는 수도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압권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속삭임이었다. 한 대의 피아노와 30여명의 현악 연주자들이 작고 여린 소리로 비밀대화를 나눌 땐 공기마저 숨을 죽였다.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꾼 3악장에서 래틀과 조성진은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래틀은 조성진을 뼛속까지 잘 알고 있는 마에스트로였다. 완벽한 리듬으로 피아노와 각 파트의 악기들이 음표를 주고 받았고, 조성진은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어린아이처럼 래틀이 만들어준 놀이터 위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놀았다. 사랑스러운 눈빛과 미소를 보내는 래틀은 시선 강탈의 주인공이었다.
앙코르는 슈만의 ‘환상 소곡집’ 중 ‘왜(warum)’이었다. 래틀은 오케스트라 현악 파트의 가장 뒷줄에 앉아 조성진의 연주를 들었다. 앙코르를 마치자 ‘와우’라는 입 모양과 함께 엄지를 추켜세우며 조성진에게 감탄하는 모습이 객석에서도 눈에 띄었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잘 맞는 ‘지음지기’를 보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