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첫 글이 공개됐다. 외할머니에 관한 추억을 읊조리듯 써낸 약 900자 분량의 짧은 글이다.
온라인 동인 무크지 '보풀'은 지난 15일 저녁 발행한 제3호 레터에서 한강이 쓴 '깃털'이라는 짧은 산문을 소개했다.
글은 작가가 외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문득 외할머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다. 사랑이 담긴 눈으로 지그시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뻗어 등을 토닥이는 순간. 그 사랑이 사실은 당신의 외동딸을 향한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등을 토닥인 다음엔 언제나 반복해 말씀하셨으니까. 엄마를 정말 닮았구나. 눈이 영락없이 똑같다."
이어 한강은 어린 시절 찬장 서랍을 열고 유과나 약과를 꺼내 쥐어주던 외할머니의 모습을 추억하며 "내가 한입 베어무는 즉시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 기쁨과 할머니의 웃음 사이에 무슨 전선이 연결돼 불이 켜지는 것처럼."이라고 적었다.
한강은 외할머니를 '흰 새의 깃털 같은 머리칼을 가진 분'이라고 묘사한다.
그는 "외할머니에게는 자식이 둘뿐이었다. 큰아들이 태어난 뒤 막내딸을 얻기까지 십이 년에 걸쳐 세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늦게 얻은 막내딸의 둘째 아이인 나에게, 외할머니는 처음부터 흰 새의 깃털 같은 머리칼을 가진 분이었다"며 "그 깃털 같은 머리칼을 동그랗게 틀어올려 은비녀를 꽂은 사람. 반들반들한 주목 지팡이를 짚고 굽은 허리로 천천히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한강은 대학 1학년 시절 홀로 외가에 내려가 외할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 일도 추억했다. 그러면서 당시 "(네 엄마가) 잘 키웠다"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쓸어준 할머니의 손길을 기억했다.
이후 그 해 10월 외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내려간 밤, 엄마의 손을 잡고 병품 뒤에서 외할머니의 "고요한 얼굴"을 마주했던 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한강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유난히 흰 깃털을 가진 새를 볼 때, 스위치를 켠 것같이 심장 속 어둑한 방에 불이 들어올 때가 있다."
한강은 지난 8월 발행을 시작한 무크지 '보풀'에서 '보풀 사전'이라는 코너를 연재 중이다. '보풀'은 뮤지션 이햇빛, 사진가 전명은, 전시기획자 최희승과 한강 작가가 모인 4인의 동인 '보푸라기'가 모여 뉴스레터 형식으로 발행하는 무크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