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의 법치락뒤치락검사의 공격, 변호인의 항변. 원고의 주장, 피고의 반격. 엎치락뒤치락 생동감 넘치는 법정의 풍경을 전합니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돈에 관심 없다고 하는 사람이 가장 관심 많은 사람입니다. 채권자(민희진)의 관심은 오로지 경제적 이익입니다.” (하이브측)
“채무자(하이브)의 주장은 자신들의 감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짜깁기, 자가당착, 아전인수식 소설일 뿐입니다. 스스로 시가총액 1조 5000억원을 날린 촌극입니다.” (민희진측)
지난 17일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 소송 심문기일. 베테랑 중의 베테랑, 판사 출신 변호사가 수두룩 했던 현장에서 격앙된 언사가 오갔습니다. 양측이 선임한 법률대리인들은 법정에서 80분 동안 주장–반박–재반박을 이어갔습니다.
이번 소송은 형식적으로는 ‘가처분’이지만 사태의 본질을 두고도 날카로운 공방이 오고갔습니다. 그날의 열띤 현장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민-방 공식 첫 대면…“뉴진스 가스라이팅” vs “자가당착, 아전인수”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 심리로 민 대표측이 제기한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심문기일이 열렸습니다. 민 대표측은 5월 31일 열릴 예정인 어도어 임시 주주총회에서 어도어 지분 80%를 가진 하이브가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게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양측은 각각 30분의 발언 기회를 얻었습니다. 민 대표측이 약 15분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고, 하이브측 또한 25분 정도 발표를 이어갔습니다. 양측의 재반박과, 재판부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심문은 시작부터 뜨거웠습니다. 먼저 민 대표측 변론 일부 내용입니다.
채무자가 찾아낸 증거는 (중략) 감사를 정당화 하기 위한 짜깁기입니다. 내용도 자가당착, 아전인수식 소설입니다. 이번 사태는 단적으로 채무자가 스스로 시가총액 1.5조원을 날리는 촌극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메시지는 (법정에서) 공개하지 못하다면서 민희진의 3년 전 대화 몇만건은 다 말했습니다. (중략) 지인과 대화 내용 은연 중에 오픈하면서 채권자를 비난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심각한 비밀 침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하이브측은 한술 더 떴습니다. 민 대표가 “뉴진스와 여성을 비하했다”며 그간 공개되지 않은 메시지 내용까지 폭로했습니다.
양측은 사건의 본질을 두고 정반대의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민 대표측은 이번 분쟁이 내부 고발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도어는 4월 3일과 4월 16일, 2차례에 걸쳐 음반 밀어내기와 레이블 간 차별 대우 등 부당함을 주장하며 하이브측에 메일을 발송했습니다. 하이브는 4월 22일 전격적인 감사와 언론 플레이로 대응했고, 이 과정에서 지난 1~3월 주주간계약 협상을 언급하며 모회사-자회사 간 갈등이 ‘경영권 탈취’로 둔갑했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하이브측은 민 대표의 주주간계약 협상과 내부고발 모두 ‘이슈 메이킹’을 위한 절차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주주간계약에 과도한 보상 요구, 뉴진스 계약 해지권 등 분쟁이 될만한 소재를 넣어 갈등을 유발했고 대대적인 분쟁을 통해 어도어 가치를 떨어트려 ‘하이브가 어도어를 팔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그림을 그렸다는 겁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경영권 탈취를 통한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였다는 주장입니다.
법적 쟁점은 주주간계약에 명시된 의결권
양측의 열띤 공방 이후 재판부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태에 대한 내용은 미뤄두고 각자가 법리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확인했습니다. 핵심은 민 대표-하이브 간 ‘주주간계약’에 기재된 ‘의결권’ 관련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였습니다.
먼저 계약서에 기재된 대표이사 선임·해임 및 의결권 관련 조항을 보겠습니다.
하이브-민희진 주주간계약
2.1 대표이사 및 이사 선임
(a) 민희진이 정관, 법령에 위반하는 행위를 하는 등 상법상 이사 해임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본 계약이 해지되지 않는 한, 하이브는 민희진이 어도어 설립일인 2021년 11월 2일을 기준으로 하여, 설립일로부터 5년의 기간 어도어의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어도어의 주주총회에서 보유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어도어의 이사회에서 하이브가 제(b)항에 따라 지명한 이사가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c) 하이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이 발생하는 경우 민희진에 대해 대표이사 및 또는 사내이사직에서 사임할 것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민희진은 지체없이 사임하도록 한다.
1. 민희진이 고의·중과실로 어도어에 10억원 이상의 손해를 입힌 경우
2. 민희진이 본 계약을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
3. 민희진이 어도어의 운영과 관련해 배임이나 횡령, 기타 위법 행위를 한 경우
4. 기타 대표이사로서 업무 수행에 중대한 결격사유가 발생한 경우
민 대표측은 계약에 따라 대표이사직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주주간계약에 하이브가 민 대표측에 유리하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정해뒀기 때문입니다. 이를 의결권 구속 계약이라고 합니다. 5월 31일 임시주총에서 하이브가 해임에 찬성할게 사실상 확실한 상황. 하이브가 주주간계약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할테니, 의결권 행사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임시주총에서 민 대표측의 피보전권리(대표이사직을 5년 유지할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하이브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시켜달라는 겁니다.
반면 하이브측은 주주간계약과 별개로 이사 위임계약 해지, 임시 주주총회 결의는 ‘주주의 권리’로서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도어의 지분 구성은 하이브 80%, 민 대표 18%, 민 대표 측근 2% 구조로 돼있습니다. 하이브는 어도어의 대주주로서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보통 계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민사소송은 ‘계약 내용의 해석’을 두고 분쟁이 벌어지는데요. 하이브는 계약 내용을 볼 필요도 없이, 상법과 민법에 따라 ‘당연히’ 해임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주주총회 의결권은 주주 권리의 핵심인데, 이를 가처분을 통해 억제하는 것을 불합리해 소송이 기각돼야 한다는 겁니다. 또 주주간계약의 내용이 하이브의 의결권 행사를 특정한 방향으로 제약(구속)한다고 인정해도, 단서 조항에 따른 ‘해임 사유’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원론적으로나 계약상으로나 해임할 수 있다는 거죠.
주주간계약 상의 의결권 구속 조항을 근거로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가처분 신청이 가능한지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례는 없다고 합니다. 다만 일부 하급심에서 주주간계약 의결권 구속 조항의 유효성을 인정한 사례는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유한킴벌리의 이사 선임을 두고 유한양행과 킴벌리클라크 헝가리 법인이 벌인 분쟁이 대표적입니다.
양사는 1969년 합작회사를 세우면서 주주간계약으로 이사 지명권에 대한 내용을 합의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를 ‘의결권 행사 계약’으로 보고 “다른 주주의 권리를 해할 여지가 없고, 불공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유효성이 인정된다”고 했습니다. 임시 주총에서 특정 이사를 해임하도록 의결하라는 유한양행의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지만, 주주간계약의 의결권 구속력에 대해 언급한 몇 없는 판결입니다.
‘해임 사유’ 정당성 인정될까?
재판부가 의결권 구속을 인정한다면 그 다음은 ‘해임 사유’에 대한 판단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상 가처분 소송은 일시적으로 집행을 멈추거나 지위를 보장해달라는 일종의 보조수단입니다. 하지만 어도어가 대표이사 해임과 관련된 주주총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하이브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단순한 ‘대표이사 지위 보장’이 아니라 주총의 결과를 바꾸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이처럼 본안 소송에 가까운 효과를 가져오는 가처분 결정을 ‘만족적 가처분’이라고 합니다. 가처분은 보통 ▷보전할 권리가 있는지 ▷권리 관계에 끼칠 현저한 손해나 급박한 위험이 있는지만 살펴보면 됩니다. 만족적 가처분 소송에서는 좀더 엄격하게 사안을 살펴봅니다. 이번 소송은 주총 결과와 관련돼있기 때문에 재판부가 ‘본질’에 대해서도 일부 판단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양측이 법정에서 치열한 프레임 싸움을 벌인 이유입니다.
특히 ‘뉴진스 계약 해지권’을 두고 공방을 펼쳤습니다. 2023년 3월 맺은 주주간계약에서는 민 대표가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습니다. 민 대표측은 올해 주주간 협상 과정에서 대표이사의 업무 권한으로 ‘아티스트 전속계약, 에이전시 계약’을 추가를 요구한 것은 맞지만, 뉴진스 전속 계약 해지와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라 주장합니다.
민 대표측은 “아티스트 전속 계약은 어도어의 영업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곡해해서 뉴진스 해지 권한을 요구했다는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경영권 탈취냐, 내부 고발자 보복이냐. 재판부는 어떤 의견을 내놓을까요? 재판부는 오는 31일이 되기 전에 결론을 내리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