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리스크 추구에 피해 위기 감지 어려워

‘나 빼곤 주식 대박’ 생존편향에 조바심 커져

유퀴즈 유재석이 30억을 벌어준다고?…리딩방의 진화 “누구나 당할 수 있다”
방송인 유재석을 사칭해 투자 비법을 알려주겠다며 거금 투자를 유도하는 불법 광고. [온라인커뮤니티 갈무리]

[헤럴드경제=신혜원 기자] 투자 리딩방 사기가 들불처럼 번지는 양상이다. 널리 알려진 범죄 패턴에도 피해자가 잇따르고 있다.

12일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전국 리딩방 피해 신고 건수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누적 3235건으로 나타났다. 피해액은 약 2970억원으로 3000억원에 육박한다.

투자 업계 전문가들은 리딩방 사기 수법이 뻔해도 누구나 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연은 판박이다. '흙수저' 사연의 부호나 연예인, 금융 전문가가 나타난다. 주식 등으로 돈을 벌자며 비공개 단체 대화방, 일명 '리딩방'으로 초대한다. 청산유수 강연과 종목 귀띔이 쏟아지고 거금을 투자한다. 뒤늦게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껴도 출구가 없다. 리딩방 '큰 손'은 연락이 끊기고 원금은 증발한다.

이 같은 범죄 수법에 사칭 피해를 본 유명인사도 다수다. 방송인 송은이·황현희, 존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등 여러 분야 인사들은 올 초 ‘유명인 사칭 온라인 피싱 범죄 해결을 위한 모임(유사모)’를 결성해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방송인 유재석을 비롯해 137명이 유사모에 동참했다. 최근에는 방송인 홍진경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저를 비롯한 동료 연예인들 사칭 범죄에 저 또한 이미지가 악용되고 있어 당연히 나서서 속지 마시라고 말씀 드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리딩방 사기꾼이 노리는 대표적 맹점은 리스크(위험) 추구 성향이다. 리스크 추구는 모든 투자자가 가진 심리적 특성이다. 이 성향이 없으면 투자를 아예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사기꾼들은 리딩방의 엉터리 투자를 수익을 위해 당연히 감수해야 할 리스크로 포장하고자 온갖 수를 쓴다. 이렇게 속아 넘어간 피해자는 가족이 만류해도 범죄 위험을 자각하기가 어렵다. '대박'의 길이 훤히 보인다고 느끼는 것이다.

‘낙관적 사고’ 성향도 피해자의 발목을 잡는다. 여기에 집단 동조 현상까지 더해지면 문제가 더 커진다. 거짓 수익을 자랑하는 바람잡이의 말에 많은 이들이 함께 열광하는 리딩방의 분위기에서 낙관적 사고의 족쇄를 벗어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생존 편향(Survivorship Bias)도 피해자를 양산하는 요인이다. 이 편향은 살아 돌아온 것 또는 잘된 것만 보고 상황을 잘못 파악하는 특성이다.

투자자 커뮤니티에서 흔한 푸념이 '나 빼고 다들 주식 대박으로 돈을 벌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투자로 돈을 잃으면 침묵한다. 투자 실패 사연은 안 보이고 소수 성공 사례만 과도하게 접하기 쉽다. 이런 편향은 '나만 뒤처졌다'는 조바심을 키운다. 리딩방 참여 권유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소비자 심리 연구자인 안서원 서울과기대 교수는 “리딩방 사기 문제를 나와 무관한 남의 얘기로만 생각하는 것도 낙관적 사고 성향에 해당한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기르는 것이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