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 연기한 저고위 저출산대책 발표 언제쯤?
'예산권' 쥔 기재부, 각 부처 인구정책 선(先)검토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인구정책 ‘컨트롤타워’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법률상 집행권과 예산권을 가진 기획재정부와의 협의가 지연되면서 저고위의 저출산 대책 발표가 미뤄지고 있다.
저고위는 각 부처에 저출산 관련 과제를 검토하도록 했지만, 기재부는 예산 편성을 이유로 저고위에 앞서 이 과제들을 먼저 검토하고 있다. 두 기관 간 줄다리기가 진행되면서 대책 발표 시점은 차일피일 늦어지는 상황이다.
8일 정부에 따르면 저고위의 저출산 대책 발표 시점이 지속해서 미뤄지고 있다. 당초 3월 대책을 발표하기로 했지만 4월로 한 차례 미뤄졌고, 4월 발표도 무산되면서 결국 5월 들어서도 대책이 발표되지 않았다. 기재부는 7월 말 세법 개정안, 8월 말 이듬해 예산안을 발표한다. 8월 이후에는 저출산 대책이 마련되더라 세제·예산에 반영되지 않아 내년 추진이 불가하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다음 달 말까지 저출산 대책이 확정되지 않으면 발표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저고위 저출산 대책 발표가 늦어지는 것은 기재부와의 세제·예산 협의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구컨트롤 타워는 저고위지만, 각 부처 저출산 관련 과제들을 기재부가 먼저 검토하는 쪽은 기재부다. 기재부는 최근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 부처에 저출산 관련 정책과제를 비상경제장관회의 안건으로 제출토록 했기 때문이다.
기재부가 직접 과제를 취합해 검토하면 저고위와 기재부가 관련 세제와 예산을 협의해야 할 필요성이 떨어진다. 저고위는 정작 기재부 사전 검토가 끝난 과제만 넘겨받게 된다. 저고위와 기재부 간 협의가 아닌 기재부 예산실의 선별을 통해 추진 정책들이 가려지가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인구정책의 ‘키’도 기재부가 쥐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기재부는 인구정책 방향을 ‘생산성’ 향상으로 정하고 이에 집중할 계획이다. 어려운 세수여건 속에서 저출산 예산을 마냥 확대할 수 없는 만큼 ‘효율성’에 집중해 단기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에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최상목 부총리는 4월 29일 중장기전략위원회 주최 미래전략포럼에서 이런 밑그림을 발표하기도 했다. 맞딱뜨린 인력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기재부가 이런 전략을 수립한 것은 지금껏 저출산 예산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었던 탓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저출산 예산은 2006년 이후 작년까지 총 379조8000억원이 투입됐고, 작년에만 48조2000억원이 들어갔지만, 당장 올해 2월 출생아 수는 역대 최초로 2월 기준 2만명을 하회했다. 이 탓에 예산 투입에 따른 뚜렷한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날 생산성 향상에 ‘선택과 집중’하는 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15~64세 여성인구는 1790만7000명인 반면 이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1.8% 수준이다. 이를 OECD 평균수준인 65.8%까지 4%포인트 높이면 71만6000명의 일손이 늘어난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최 부총리는 “인구위기 대응의 게임 체인저는 ‘생산성 향상’”이라며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OECD 상위 25% 수준으로 향상되면, 2060년 성장률이 0.8%포인트 상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생산성에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기재부의 전략은 저고위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저고위 관계자는 “계속 협의를 진행 중”이라면서도 “저고위 입장에선 저출산이 심각한 만큼 더 많은 파격적인 대책들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고, (예산권을 가지고 있는) 기재부는 기재부 나름의 입장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재부는 다음 주 재정전략회의를 열고 저출산 분야 예산을 주요 의제로 논의한다. 저출산 대응 및 일·생활 균형을 위해 육아휴직·유연근무 등 출산·육아기 고용안정과 경력단절 예방 사업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일·가정 양립 확산을 위한 제도·재정적 지원 확대 방침을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