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소재서 글라스 급부상

삼성전기 2026년 양산 ‘유리경쟁’

SKC 美공장 구축...글로벌 격전지

삼성도 낙점 ‘유리 반도체 기판’ 뜬다
SKC가 CES 2023에서 처음 공개한 반도체 글라스 기판 [각 사 제공]
삼성도 낙점 ‘유리 반도체 기판’ 뜬다
삼성전기가 CES 2024에서 선보인 반도체 글라스 기판

최근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덩달아 ‘유리’(글라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 플라스틱 반도체 기판보다 안정성과 전력 효율이 높다는 점 때문이다. SK가 이미 미국에 공장을 짓고 양산을 준비 중인 가운데 일본 소재기업 다이닛폰프린팅(DNP)도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엔 삼성까지 사업 진출을 공식화하며 ‘유리 경쟁’에 불이 붙었다. 반도체 업계는 반도체 성능과 전력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줄 유리 기판이 향후 반도체 패키징 공정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소재로 주목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에서는 반도체 기판 사업을 하고 있는 삼성전기가 신사업 중 하나로 글라스 기판을 낙점했다.

이달 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현재 세종 사업장에 글라스 기판 시제품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며 “내년에 글라스 기판 시제품을 만들고, 2026년 이후 양산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버 중앙처리장치(CPU)용, AI가속기 등 고성능 반도체가 탑재되는 하이엔드 제품 중심으로 글라스 기판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보다 앞서 SK는 반도체 소재 사업을 한 축으로 하고 있는 SKC를 앞세워 일찌감치 글라스 기판 사업에 뛰어들었다. SKC는 2021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고성능 컴퓨팅(HPC)용 글라스 기판’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지목했다. SKC 자회사 앱솔릭스가 지난해 미국 조지아주에 글라스 기판 공장을 완공하며 양산 체제를 구축하는 등 업계 내 최일선에 서 있다.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도 사업 진출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은 오는 2030년 안으로 글라스 기판을 적용한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일본에선 다이닛폰프린팅(DNP)이 지난해 3월 글래스 기판을 개발했다고 밝히며 2027년 양산을 목표로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독일의 특수유리 기업 쇼트도 글라스 기판 사업에 힘을 싣고 있고, 대만의 기판 전문기업 유니마이크론도 잠재적인 사업자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유리기판 시장이 벌써부터 반도체 기업들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른 것은 유리 소재 특성에 기인한다. 기존 플라스틱 기판보다 얇고 매끄러운 표면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플라스틱 기판은 표면이 고르지 못하다보니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메모리 등 여러 반도체들과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를 하나의 기판 위에 얹어 패키징할 때 중간에 실리콘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단점을 상쇄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전체 패키징이 두꺼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반면 유리 기판을 사용하면 이를 해결해 더 많은 칩을 얹으면서도 패키징 두께는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또한 기존 플라스틱 기판은 커질수록 휘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유리는 단단한 특성 덕분에 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나의 기판 위에 서로 다른 칩을 이어 붙여 패키징하는 과정에서 수축이나 뒤틀림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구현해 성능을 극대화하는 AI 반도체 시대에 글라스 기판이 주목받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글라스 기판의 기술적 장점에 주목하면서도 실제 제품 상용화 가능성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주요 기업들이 사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이제는 그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