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전시 후 발생” 추측…국제소송 준비중
대상 특정도 안돼…해결 요원·실효성 의문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사이트가 한두 곳도 아니고 한두 작품이 아니라 최근 전시한 작품 대부분을 베꼈다. 심지어 내 이름을 걸고 판매하는 곳도 있다. 마치 내가 라이선스를 준 것처럼….”
빛을 활용한 독특한 작업으로 잘 알려진 황선태(51) 작가의 작업이 무단 복제돼 복수의 온라인몰에서 판매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황 작가가 중국에서 개인전을 한 이후 발생한 것으로 추정돼 국제 소송을 준비 중이지만 현실적으로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는 회의감이 커진 상황이다.
23일 미술계 등에 따르면, 황 작가의 작품이 작가의 사전 상의 없이 복수의 온라인몰에서 대량 유통되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 판매자는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판촉을 진행하고 있다.
작가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조잡한 복제품 제작 영상을 올리고, 소비자가 구입해 설치하는 영상도 올라온다”며 “(영상에 늘어나는) ‘좋아요’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토로했다.
황 작가는 집이나 사무실, 골목길 같은 일상공간을 단순한 선으로 표현하고, 빛을 비춰 3D(차원)의 공간감에 더해 시간성을 표현하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강화유리 뒷면에 밑그림을 그린 뒤 LED조명을 비추는 방식인데 작품마다 최적의 빛을 찾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작가는 국내 중견 화랑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개최하며 컬렉터들에게 알려졌고, 아트페어 등을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며 일반 미술애호가들에게도 인기다.
이런 그의 작품이 허가 없이 복제돼 삽시간에 퍼졌다. 작가는 누가 언제부터 이런 일을 했는지 가늠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불법 복제품 유통도 국내는 물론 중국과 영국의 지인들의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 그는 다만 “특정 국가를 지칭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지난해 중국의 미술관 2곳에서 전시가 있었다. 추측하건대 그 이후에 발생하지 않았나”하고 짐작할 뿐이다.
소송을 비롯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이나 해결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황 작가는 “국내 유명 방송사들이나 제작사도 IP(지식재산권) 도용 사건은 어렵다고 들었다”면서 “개인 작가인 내가 변호사를 쓴다고 과연 해결이 될까. 시간도 오래 걸릴 듯해 실효성이 의문”이라며 회의감을 드러냈다.
한 가지 희망은 지난해 12월 한국 작가가 중국 법원에서 저작권을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는 점이다. 설치작가 이재효(58)는 자신의 작업을 그대로 베낀 제품이 중국 쇼핑몰에서 유통되는 것에 대해 3년 전부터 소송을 진행해 1심에서 승소한 바 있다. 개인 자격이 아닌 중국 내 한 예술단체와 함께 소송을 진행해 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명옥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장은 “디지털기술 발달로 새로운 기회도 생기지만 불법 복제 등 저작권 침해도 심각하다”며 “작가 개개인의 문제로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정부는 연합회와 협력해 유사 사례를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예술가들의 IP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