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착공 2025년으로 3년 지연

지역갈등·용수공급·토지보상 등

첩첩 규제로 속도전에서 밀려

4년간 첫삽도 못 뜬 120조 초대형 SK ‘반도체 클러스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 [연합]
120조 초대형 사업 4년간 땅조차 못 구해…SK만 발목 잡혔다 [속 터지는 반도체]

“(반도체공장 착공 지연의) 도가 지나칩니다. 조속히 반도체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

오는 22일, 정부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사업 착수를 발표된 지 만 4년이 된다. 그러나 SK하이닉스 반도체공장은 ‘첫 삽’조차 뜨지 못하면서 관련 산업계 우려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애초 계획으로 보면 SK하이닉스가 들어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21년 부지 조성에 들어가 지난해에는 SK하이닉스가 본격적인 공장 건설을 시작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용인 클러스터는 올해 상반기에야 본격적인 부지 조성에 나설 예정이며 SK하이닉스 공장 역시 2025년에야 짓기 시작할 예정이다.

우리와 반도체 초격차를 다투는 주요국들은 자국 생산기지를 발 빠르게 확대하는 반면 한국 반도체산업을 선도할 핵심 산업단지는 지지부진하면서 ‘속도전’에서 크게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SK하이닉스 공장 착공…2022년에서 2025년으로 ‘3년’ 늦춰져=헤럴드경제가 13일 양향자 무소속 의원실, 정부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SK하이닉스 공장 착공 예정시점은 2025년 상반기다. 이는 2019년 2월 당시 산업통상자원부가 첫 발표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계획안의 ‘2022년 착공’보다 3년가량이 늦춰진 것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부지 126만평(415만㎡) 규모에 121조8000억원(반도체 공장 4기 투자 금액 120조원)가량을 쏟아 용인시와 SK하이닉스 등이 야심 차게 조성 중인 산업단지를 뜻한다.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반도체 미래 시장 선점을 명분으로 지원을 약속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SK에코플랜트, 용인도시공사 등이 출자한 특수목적회사(SPC)인 ‘용인일반산업단지㈜’가 사업 시행자로서 클러스터 부지를 우선 조성하면 이 조성된 부지를 다시 SK하이닉스가 분양받아 반도체공장을 착공하는 순서로 단지가 조성될 계획이다.

그런데 사업을 발표한 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SK하이닉스는 땅을 분양받지 못했다. 사업 시행자인 용인일반산업단지㈜의 부지 조성이 완료되지 않은 탓이다. 지난해 4월 부지 관련 ‘사전 착공’을 겨우 시작했고, 올해 3월에야 본격적인 부지 토목공사가 가능할 것이란 계획만 발표된 상태다. 현재 ㈜용인일반산업단지의 클러스터 부지 착공이 지연되면서 SK하이닉스의 공장 착공시점이 2022년이 아닌 2025년 상반기로 변경된 것이다.

▶클러스터 부지 착공…산단 승인부터 늦어졌다=반도체업계에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착공 지연의 구체적 원인을 3가지로 지목한다.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지역 민원(11개월 지연) ▷토지·지장물 보상 장기화(1년6개월 지연) ▷용수 공급 인프라 구축 장기화(1년 지연) 등으로 인해 3년가량 손해 봤다는 지적이다.

착공 지연은 곧 클러스터에 대한 ‘산업단지 승인’시기가 늦어졌다는 점을 의미한다. 용인일반산업단지㈜는 지자체에 산업단지 조성 승인을 얻어야 관련 부지 공사를 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 산업단지 승인을 위해 반드시 ‘환경영향평가’가 먼저 통과돼야 한다. 주민에 대한 ‘토지 보상’ 역시 산업단지 승인이 된 뒤에야 가능하다. 그런데 용인 클러스터사업의 경우 환경영향평가 지연으로 산업단지 승인이 늦어졌고 이에 따라 토지·지장물 보상도 그만큼 늦게 시작하게 된 것이다.

환경영향평가에 따른 지역 민원부터 살펴보면, 관련 갈등이 반복되며 계획보다 11개월가량이 지연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2월 산업통상자원부의 클러스터 조성계획이 발표된 이후 그해 4월에 환경영향평가 논의가 시작했다. 그런데 산단 조성 후 발생하는 오·폐수가 안성시 고삼저수지로 유입되고, 안성시에서부터 송전선로가 연결되는 것으로 전력 공급방안이 계획되자 ‘이익은 용인이 가져가고 피해는 안성이 입는다’는 우려와 함께 반대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안성시민의 서명운동이 진행되는 등 지역 간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2020년 11월에 환경영향평가가 통과되고 2021년 1월에 지자체들과 사업 시행자 간 협약이 체결됐다. 대신 SK하이닉스가 방류수 수질을 개선하고, SK건설(현 SK에코플랜트)은 반도체산업 관련 배후 산단을 안성에 조성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가 방류수로 인해 농산물에 피해를 줬다고 추정될 경우 해당 농업인과 안성시가 추천하는 공인 인증기관 검사를 통해 지체 없이 농업인에게 피해를 보상하기로 했다. 또 SK하이닉스는 산단 내 급식업체가 사용하는 농산물의 80%를 안성·용인지역에서 구매해야 한다.

4년간 첫삽도 못 뜬 120조 초대형 SK ‘반도체 클러스터’
SK하이닉스 청주 반도체 생산라인. [SK하이닉스 제공]

▶지역 갈등에 늦어진 용수 공급…토지 보상도 아직 진행 중=용수 공급과 토지 보상 역시 계획보다 지연됐다.

업계에선 용수 공급시기가 예정보다 1년6개월 가량 늦어진 것으로 본다. 앞서 환경영향평가와 관련된 지자체 간 합의가 이뤄진 뒤인 2021년 5월 사업 시행자인 용인일반산업단지㈜는 용수공급시설 설치공사를 위해 승인권자인 용인시에 인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취수지점을 관할하는 경기 여주시가 상생 방안 마련이 먼저라며 협의 과정에서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2021년 5월 시작된 논란은 지난해 11월에야 여주시와 협의를 완료하고 국회에서 관련 협약까지 체결했다.

여주시가 관로 설치를 위한 인·허가를 해주는 대신 경기도가 여주시 내에 산업단지를 조성해 SK하이닉스가 자사 협력업체 입주를 지원하고, ‘여주 쌀 소비 촉진’ 같은 지역사회 공헌 프로그램도 가동한다는 조건으로 성사된 협의다.

토지·지장물에 대한 보상 일정 역시 장기화되면서 착공을 지연시켰다. 토지 수용 협의기간이 1년가량 증가했다는 지적이다. 토지 보상 절차는 부지 선정, 토지 및 지장물 조사, 보상계획 공고, 감정평가, 보상 협의 순으로 진행된다. 주민 대다수는 토지에 있는 건축물·수목 등 지장물의 조사를 거부해오다 2021년 9월부터 조사에 응하기 시작했다. 당시 토지주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됐다며 보상가로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상태가 됐다고 호소했다.

용인시가 토지 보상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 중재에 나서면서 지난해 2월 12%에 그쳤던 토지 보상률은 한 달 뒤 59.9%로 크게 늘어 그해 4월 사업 시행자가 부지 관련 착공계를 제출할 수 있는 법적 요건을 갖추게 됐다. 지난해 3월부터 관련 협의 보상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마무리되진 않았다. 최근까지 토지 보상이 99%, 지장물 보상(소유주 기준)은 75%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원팀 되기도 모자른 시국에…”=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착공이 예정보다 지나치게 지연되자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 수출 핵심인 메모리반도체에 대한 적기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착공 지연의 근본 원인으로 기업과 정부 간 ‘원팀’ 비전의 부재가 꼽힌다. 지자체와 해당 지역주민의 지역이기주의적 행태가 만연된 와중에 정부 역시 뚜렷한 동력이 되지 못하면서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위한 대승적 차원의 협력 실현을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안성시의 환경영향평가 우려, 여주시의 용수 공급 반대, 용인시민의 토지 보상 반대에 따라 공사가 늦춰졌다. 이는 최근 글로벌 기업들과 정부 간 협조와 상반된 모습으로 평가된다. 최근 미국은 본토에 반도체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조속한 착공과 보조금 지원 등을 강화하고 있으며, 대만 역시 자국을 대표하는 반도체기업인 TSMC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장 착공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역시 2나노미터(㎚·10억 분의 1m) 첨단 공정 칩 개발을 내걸고 지난해 11월 설립된 ‘라피더스’를 지원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용인 공장 착공 지연은 반도체산업에 정부가 아직도 원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현재 공사를 지연시키는 여러 가지 제도적 요건을 손보고 반도체 등 국가첨단산업 육성을 조속히 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헌·김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