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유엔 과학문화기구(UNESCO)가 난징(南京) 대학살에 대한 자료를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하기로 발표하면서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자금 옥죄기에 나섰다. 미국에 이어 일본이 기금 동결 검토에 나서면서 유네스코가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11일 사설을 통해 “일본은 유네스코 활동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기억유산 등록 제도의 개선을 제의하는 것은 필수적이다”고 주장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전날 아사히(朝日)TV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에 대한 분담금 및 출연금 동결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유네스코 출연금 동결 검토...유네스코, 재정위기 빠지나

요미우리는 지난해 유네스코에 37억 엔(358억 7853만 원)에 달하는 분담금을 지불했다고 강조했다. 유네스코 예산 5억 700만 달러(5888억 원)의 6.08%에 달하는 금액이다. 2014년 3월 유네스코 발표한 국가 지원금 중 최대 규모다. 미국이 22%로 가장 높지만 2011년 이후 납부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세계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일본 신탁기금(JFIT)과 유네스코 지역 역량 구축프로그램 등 유네스코에 각종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의 기금 동결 검토가 유네스코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미국은 지난 2011년 팔레스타인의 정식 회원국 신청을 승인한 유네스코에 항의의 뜻으로 기금을 중단했다. 정식 국가가아닌 단체가 든 국제기구에 국가 예산을 쓸 수 없다는 자국 법 조항을 들어 UNESCO 재원의 22%에 달하는 6000만 달러 기금 기부를 동결시켰다. 당시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유네스코가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며 “유네스코가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고 있다”고 미국을 비판했다. 유네스코는 2014-2015년도 초기 예산 규모를 6억 5300만 달러로 책정했으나 미국과 이스라엘 등의 분담금 미지급으로 예산을 5억 700만 달러로 축소해야 했다. 그 결과, 유네스코의 교육 사업 일부가 축소되거나 중단됐다.

유네스코는 교육ㆍ과학ㆍ문화ㆍ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촉진함으로써 세계 평화와 인류발전을 증진시킨다는 목적으로 1946년 발족됐다. 하지만 기금 분담률이 높은 국가들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면서 국가들의 권력 과시를 위한 ‘장(場)’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린 메스켈 스탠포드대학교 인류학자 교수는 지난해 논문자료를 통해 “공식 회의보다는 비공식적인 활동이 유네스코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한편, 가와무라 야스히사(川村泰久) 일본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10일 유네스코에 “중립적이고 공평해야 할 국제기구로서 문제가 되는 일이기에 극도로 유감스럽다”고 표명했다. 이어 “유네스코의 사업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제도 개혁을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일본은 유네스코의 정상적인 세계 기록유산 등재 업무에 간섭하거나 집착하는 것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