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 박인제 감독, 한국형 히어로는 어떻게 나왔을까?(인터뷰)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디즈니+가 오랜만에 대박을 쳤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이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제작비를 무려 500억원이나 투자한 대작답게 한국형 히어로물이 제대로 취향저격됐다.

원작 웹툰의 작가 강풀이 직접 각본을 맡아 촘촘히 쌓여지는 캐릭터들의 탄탄한 서사와 원작을 초월하는 싱크로율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미국 훌루에서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중 공개 첫 주 시청 시간 기준 가장 많이 시청한 작품에 등극했으며, 공개 이후 일본, 인도네시아,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도 연이은 호평을 얻은 바 있다.

미국 포브스(Forbes)지는 “호소력 짙은 감정적 서사를 지닌 이야기. 탄탄한 스토리가 계속해서 흥미를 자극한다”고 했고, 버라이어티(Variety)지도 “‘오징어 게임’에 이어 아시아에서 탄생한 히트작”이라고 극찬했다.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아픈 비밀을 감춘 채 과거를 살아온 부모들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닥치는 거대한 위험에 함께 맞서는 초능력 휴먼 액션 시리즈다. 총 20부작인 ‘무빙’은 지난 8월 9일 공개 첫 주에 7개의 에피소드를 공개한 이후 매주 수요일 2개의 에피소드를 공개해오다 마지막 주인 20일 피날레가 담긴 18~20회을 공개했다.

류승룡 조인성 한효주 김성균 등 배우들의 열연 뿐만 아니라 몰입감을 높이는 박인제 감독의 연출도 화제가 됐다. 최근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박인제 감독은 2011년 ‘모비딕’으로 데뷔한 후 ‘특별시민’(2017)과 2020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시즌2’의 연출을 맡았다. 연출을 맡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무빙’ 박인제 감독, 한국형 히어로는 어떻게 나왔을까?(인터뷰)

“내가 52세다. 나이가 좀 있는 세대, 만화 출판 세대다. 강풀 작품은 ‘일쌍다반사’(2006), 광수생각 등 만화를 책으로 보고 웹툰은 보지 않았다. 제대후 웹툰을 접했지만 여전히 어색했다. 원작인 ‘무빙’을 몰랐다. 그래서 원작 웹툰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 작품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지 않았고, 처음 보는 작품이라 나도 새롭게 연출할 수 있었다.”

박 감독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가 늦둥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고 했다. 그는 “자식에 대한 이야기다. 하늘을 날고 달달한 이런 영화적인 건 내 취향에 맞는 건데, 아기까지 생긴 생태에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니 마음을 울리는 게 있어서 기꺼이 연출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원작자인 강풀은 ‘무빙’에서 처음으로 시나리오까지 썼다. 그래서 연출자로서 시나리오가 이질감이 느껴진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웹툰 방식이 여전히 남아있는 시나리오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점에 대해 박인제 감독은 “강풀 작가님은 시나리오를 처음 썼고, 실제 찍어본 경험이 없지만 내가 시나리오를 쓰는 연출가라서 그런 부분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서 “힘들었다기 보다는 영상화 시키는 작업이 좀 더 많아졌다. 웹툰의 말풍선을 독자들이 소화하는 것과 배우가 말하는 건 다르다. 대사는 직접 꽂히고, 말풍선은 간접적이다. 액션 시퀸스는 작가가 세세하게 못쓰니까 우리가 만들어야 했다. 가령, ‘킹덤2‘에서 기와장 위에서 주지훈이 칼싸움하는 장면에서는 대본에는 한 줄로 되어있지만, 드라마에서는 긴 시간을 할애했다”고 전했다.

‘무빙’은 표현 수위 제약을 별로 받지 않는 OTT 시리즈물이어서 수위가 꽤 높았고 잔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박 감독은 “전체적으로 내 연출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장주원(류승룡)은 찢어지는 상처가 나야, 재생할 수 있고,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 그 부분을 보여주기는 했다. 우리 드라마는 계몽 드라마는 아니다”면서 “그래도 잔인한 장면은 안보여준 게 많다. 주원이 나오고 나면 다 쓰러진 상태만 보여주었다.10~11부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다룰 때 20분 정도 액션만 나온 적이 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고 생각해봤다. 다행히 다양하다고 하신 분들이 많았고, 재밌게 보신 분도 많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무빙’ 박인제 감독, 한국형 히어로는 어떻게 나왔을까?(인터뷰)

‘무빙’은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초반보다 캐릭터들의 활약이 이어지는 중후반부가 훨씬 더 재밌다. 초반에는 암살자 프랭크(유승범)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박 감독은 “프랭크는 어려운 역할이다. 무술 액션에 노랑 머리, 어설픈 한국어를 구사하는 할리웃 배우를 캐스팅하기는 어렵다. 고민하다 강풀 작가가 유승완 감독에게 전화해 유승범 배우를 캐스팅하게 됐다. 초중반까지 큰 역할을 해냈다. 너무 땡큐였다”고 전했다.

‘무빙’은 장르물이지만 멜로가 들어가있다. 조인성(김두식)과 한효주(이미현)는 키스도 한다. 김 감독은 “제 영화 인생에 사극은 없다고 했는데, ‘킹덤2’를 했고, 멜로도 없다고 했는데 이번에 하게됐다”면서 “어색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푸는데 두식-미현의 키스를 활용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소박하게 사는 조인성-한효주 부부의 과수원 신을 찍일 때다. 안기부 민차장(문성근)을 피해 가난하고 초라한 삶을 사는데, 조인성이 너무 멋있어 문제였다. 옷도 더럽게 하고 머리도 단정하지 않게 해보는 등 망가뜨리는 시도를 해봤지만 한계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장주원(류승룡)의 액션도 큰 화제다. 모텔 원테이크 액션 신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박 감독은 “액션이 뜬금없이 나오는 게 아니라 감정에서 시작된다. 다른 캐릭터들도 여자친구, 아들, 딸을 구하기 위해 액션 동작이 이어진다. 좋은 액션 시퀀스는 이야기, 감정이 표현되어야 한다. 때리는 것만 멋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박 감독은 “관객들은 마블의 어벤저스에 익숙하다. 그들은 편당 1천억을 쓰는 집단이다. 우리는 영리하게, 독창적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 아직 미숙한 부분도 있지만 많이 배웠다. CG가 들어가는 착지 동작만 해도 많이 배웠다”고 전했다.

‘무빙’ 박인제 감독, 한국형 히어로는 어떻게 나왔을까?(인터뷰)

“강풀 작가가 나보다 한 살 어린 X세대다. 극중 나오는 문민정부-안기부-국정원-범죄와의 전쟁-월드컵을 다 거친 세대다. 그런 것들을 그리는 데는 어색함이 없지만, 벌써 멀게 느껴진다. 인터넷이 생기면서 정보력의 차이가 생겨 더 그렇다. 저나 강풀이나, 우리가 지나온 이야기다. 청계천에도 고가도로가 있었는지 잘 모르더라. 이런 게 개인적으로 흥미롭다.”

‘무빙’을 보면 한국형 히어로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한과는 다른 결의 북한의 초능력자들이 남한 초능력자와 피날레를 앞두고 있다.

“한국형 히어로 라고 물어보면 딱히 대답하기 힘들다. 늘 하던 대로 한 거다. 내가 봤던 영화, 생각해봤던 것들에서 나왔다. 영화학교에서 단편영화를 찍으면 돈이 부족해 장르영화를 만들기가 어렵다. 아카데미에서 만든 단편영화는 영화제를 겨냥한다. 나는 시나리오 아이템을 잡을 때 기존에 없는 걸 하고싶다. 그런 요소들이 집약돼 강풀 작가를 만났고 ‘무빙’의 한국형 히어로가 나온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