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평화 1위, 부활 7위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형님밴드들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것도 재밌다. 현장 불꽃평가단이 던지는 투표 향방을 예측하기가 매우 힘들다. 아이돌 연습생들이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다. 그것만으로도 ‘불꽃밴드’를 보는 재미가 있다.
등수를 매기는 ‘경연의 압력’은 레전드들도 피해가지 못한다. 다들 긴장했다. 김종서는 지나치게 긴장해서인지 노래 설명을 제대로 못했다. 평가전 최하위를 설욕해야 하는 부활의 김태원은 1라운드의 인트로에서 기타를 실수하기도 했다.
‘불꽃밴드’ 레전드 밴드들이 청중들과 함께한 첫 경연에서 ‘귀호강 무대’를 선사하는 한편, 희비가 교차되는 경연 결과로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지난 10일 방송된 MBN ‘불꽃밴드’ 2회에서는 사랑과 평화, 전인권밴드, 이치현과 벗님들, 다섯손가락, 권인하밴드, 부활, 김종서밴드 등 레전드 밴드 7팀이 서로를 탐색한 첫 평가전 순위가 모두 공개됐다. 여기에 200명의 ‘불꽃 평가단’과 함께한 정식 경연의 서막이 올라,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을 안겼다. 특히 밴드 음악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는 전설들의 ‘명불허전’ 무대에 시청자들도 호평을 보내 ‘웰메이드 음악 예능’의 위엄을 입증했다.
앞서 서로를 탐색하는 ‘평가전’을 가진 7개 팀은 경연 후, 5위 김종서 밴드, 4위 다섯손가락, 3위 전인권밴드 순으로 결과가 발표되자 ‘멘붕’에 빠졌던 터. 이날 김구라와 배성재 2MC는 “사랑과 평화가 1위를 차지했으며, 2위가 이치현과 벗님들”이라고 발표했다. 1위에 오른 사랑과 평화 보컬 이철호는 “제일 오래된 팀이라고 예의를 차려주신 것 같다”고 겸손해 하면서도 “끝까지 1위를 하겠다”고 야심차게 말했다.
하위권 발표만 남겨둔 가운데, 부활과 권인하밴드는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이윽고 공개된 6위는 권인하밴드, 7위는 자연스럽게 부활이 됐다. 부활에게 하위권을 준 밴드는 무려 여섯 팀으로, 동료 아티스트들에게 낮은 평가를 받은 것에 부활 리더 김태원은 충격을 받은 듯 너털웃음만 지었다. 반면 박완규는 끝까지 캐릭터를 유지하겠다며 “형님들, 다음 주부터 긴장하시라!”며 묵직한 경고를 날렸다.
평가전 이후, ‘불꽃 평가단’과 함께하는 첫 경연의 막이 올랐다. 오로지 ‘불꽃 평가단’의 투표로 순위가 결정되는 만큼, 대기실엔 긴장감이 맴돌았다. 1라운드 주제는 ‘2023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노래’로, 평가전 1위를 차지한 사랑과 평화가 ‘경연 순서권’ 베네핏을 차지해, 7개 팀의 무대 순서를 정했다. 경연에서 다소 불리한 첫 주자가 된 이치현과 벗님들은 “우리가 부담스러워서 첫 주자로 고른 것 같다. 회차가 지날수록 감정의 골이 점점 깊어질 것”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이치현과 벗님들은 “우리에게 최전성기를 가져다준 곡”이라며 ‘사랑의 슬픔’을 들려줬다. 특히 이치현의 플루트 연주까지 더해지면서 ‘감성 끝판왕’다운 무대를 보여줬으며, 이들은 ‘불꽃 평가단’에게 총 132표를 받았다.
두 번째 주자는 전인권밴드였다. 두번째 선곡도 반칙이었다. 2004년 발표된 ‘걱정 말아요 그대’를 들고 무대에 오른 전인권은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 무대를 꾸며, 객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에 타 밴드들로부터 “찢었다”, “올킬이다” 등의 호평이 쏟아졌으며, 159표를 받아 단숨에 1위로 올라섰다.
이후 김구라는 기뻐하는 전인권에게 “사실 ‘평가전’ 때 녹화가 새벽 3시에 끝나서 (전인권) 선배님 걱정을 많이 했다. ‘녹화가 길어지면 중간에 간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으셨다. 눈빛도 초롱초롱하시고 제일 열심히 하셨다”며 1954년생인 전인권의 투혼을 극찬했다.
훈훈한 분위기 속, 다섯손가락이 세 번째로 등장했다. 1985년 발매한 1집 타이틀곡 ‘새벽기차’를 들고 나온 이들은 편안한 보컬에 맛있는 연주가 더해져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들의 합을 보여줬다. 그러나 아쉽게 130표를 받아 3위에 머물렀다. 이에 다섯손가락은 “솔직히 기분이 안 좋다”, “집에 가고 싶었다”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으며 레전드도 피해갈 수 없는 경연의 무게를 토로했다.
4번 주자 권인하밴드는 ‘젊은피’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평가전 6위였던 이들은 “다 찢도록 하겠다”며 젊음의 패기를 안고 등장, 1989년 권인하 프로젝트 그룹인 마로니에의 1집 타이틀곡 ‘동숭로에서’를 34년 만에 새롭게 들려줬다. 풍성한 사운드에 권인하의 담백한 보이스가 어우러진 무대는 147명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본 경연에서 발톱을 드러낸 천둥 호랑이의 포효에 대기실의 밴드들도 감탄했다.
‘펑크 밴드의 시초’ 사랑과 평화는 직접 고른 다섯 번째 순서로 등장했다. 평가전 1위를 차지한 후 “끝날 때까지 1등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던 이철호는 “이번 무대부터는 더 재밌어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이어 1978년 발표한 1집 타이틀곡이자 대표곡인 ‘한동안 뜸했었지’로 연주부터 객석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젊은 패션 감각을 뽐낸 이철호는 공연 중간 옷을 갈아입고 맨발 퍼포먼스까지 선보였으며, 호응을 유도하는 등 노련한 무대 매너로 현장을 뜨겁게 달궜다. 에너지 넘치는 이들의 무대에 최초 ‘앙코르’ 요청이 터져나왔고, 이들은 168표로 단숨에 1위에 올랐다.
평가전 최하위였던 부활은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모습이었다. 대중성이 있는 밴드인 만큼, 등장만으로 열띤 호응이 이어졌고, 이들은 2002년 발표된 명곡 ‘네버 엔딩 스토리’를 들려줬다. 이어 박완규는 “이승철이 부른 노래라 부담이 있지 않았냐?”라는 질문에 “이 곡은 부활 곡이며, 역대 보컬들이 이 노래를 사랑한다”는 현답을 내놨다. 하지만 부활은 리더 김태원의 기타 연주 실수가 나와서인지, 냉정한 평가 속에 125표로 최하위가 됐다.
마지막으로는 1세대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김종서를 중심으로 이뤄진 김종서밴드가 나섰다. 김종서는 “락킹한 이미지를 심어준 곡”이라며 1995년 발매한 4집 타이틀곡 ‘플라스틱 신드롬’을 선곡, 빵빵한 사운드로 현장을 압도했다. 김종서의 힘 있는 보컬과 화려한 연주가 어우러져 김종서밴드는 134표를 획득, 4위를 차지했다.
결국 평가전에 이어 첫 경연에서도 부활은 ‘2연속 7위’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았다. 그럼에도 부활은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분명한 기대감이 있다. 올라가는 모습 보여드리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박완규는 “형님들, 다음 경연 긴장하셔라!”며 초지일관 경고를 날려 유쾌한 웃음을 안겼다.
전설들의 오늘을 있게 한 노래, 그리고 이를 선보인 진정성 넘치는 무대가 깊은 울림을 안겨준 한 회였다. 여기에 전설들의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승부욕, 인간미 넘치는 입담과 우정이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공감까지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