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순식 기자] KDB산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의 맏형이다. 그래서 늘 한국경제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자임하며 구조조정의 선두에 서곤 한다.
산업은행의 62년 역사를 곧 굵직굵직한 대기업 구조조정의 역사라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이에 따른 대우그룹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구조조정의 복판에는 늘 산은이 있었고,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그랬다.
하지만 이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중극의 등장이라는 거대 변수와 산업 구조의 개편이라는 커다란 격랑 속에서 산은은 휘청이고 있다.
시장의 안전판을 위해 산은이 어찌보면 반강제적으로 떠안게 된 자회사들이 워크아웃과 법정관리 등으로 접어들며 부실이 심화된 탓에 산은에게는 커다란 짐이 되는 양상이다. 결국 자회사에 대한 관리 감독의 책임은 산은에게로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산은 입장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현재 거론되는 자회사들은 모두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은이 출자전환을 통해 이른바 ‘총대’를 메고 인수한 회사들이다.
중국의 등장과 산업 구조가 개편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이미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들을 인수해 되살리는 게 결코 쉬운일은 아니라는 하소연이다.
애초에 지분을 인수할 때부터 우량회사가 아니었고 시장 상황도 좋지 않아 경영정상화와 매각 작업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해명이다.
산은 관계자는 “그렇다고 이 와중에 국책은행인 산은이 일반 시중은행처럼 충당금을 쌓고 빠질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실제 대우조선해양과 대우건설, KDB생명, 한국항공우주(KAI) 등 현재 구조조정과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기업들은 모두 기업의 부실을 산은이 출자전환을 통해 반강제적으로 떠안은 회사들이다.
조선업 구조조정의 핵심인 대우조선해양은 대우그룹 해체 과정에서 산은이 출자전환을 통해 대주주 지위를 얻게 된 자회사다.
이후 조선업 호황을 타고 한화에 매각 직전 단계까지 달했지만, 곧이어 터진 미국발 금융위기로 한화에서 잔금 납부 조건 등의 변경을 요구하며 논쟁이 이어지다 결국 계약이 해지됐다. 당시 매각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 구조조정의 좋은 선례로 남을 수도 있던 회사였다.
‘한국의 보잉’으로 불리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또한 대우그룹 해체의 산물이었다.
이 회사는 1999년 이른바 ‘빅딜’ 와중에 현대ㆍ삼성ㆍ대우 등 당시 ‘빅3’의 항공산업 분야를 따로 떼낸 뒤 합병한 회사다.
이후 대우그룹이 해체된 뒤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산업은행이 출자전환을 하면서 현재의 지분 구조를 갖추게 됐다.
이 회사는 방위산업이라는 특수성 탓에 해외 매각이 쉽지 않고, 국내에서도 한화와 한진 등 인수 가능 기업이 제한돼 있어 충분한 경쟁력은 가진 기업임에도 매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KDB생명은 대우건설 인수 후유증으로 부실화된 금호그룹의 구조조정 와중에 인수하게 된 회사다.
산은은 2010년 금호그룹의 구조조정을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KDB생명의 전신인 금호생명을 PEF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인수했다.
당시 금호생명은 보험금 지급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적기시정조치(부실 위험 금융회사에 대한 정상화 조치) 직전까지 몰린 상태였다.
게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마땅한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자, 결국 산은이 금호생명을 떠안게 됐다.
굴지의 대형건설사 대우건설 또한 금호그룹 부실의 여파로 대주주의 지위게 오른 회사였다.
금호그룹은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했으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2년 만에 다시 시장에 내놨다.
그러나 마땅한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산업은행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산업은행은 금산분리법에 따라 금융회사 이외 업체를 계열사로 둘 수 없어 사모투자전문회사(PEF)에 전액 출자하는 방식으로 대우건설 지분을 매입했다.
이때 설립된 회사가 KDB밸류제6호다. KDB밸류제6호 유한회사는 대우건설 최대주주는 지분 50.75%를 보유하고 있다.
이 유한회사의 지분 100%를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으며, 만기일은 2017년 10월이다. 지난해 산은은 KDB밸류제6호 펀드 만기를 2년 연장하며 대우건설을 2년 내 매각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펀드 만기가 돌아오면 산은은 대우건설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하지만 산은이 대우건설을 인수했을 당시 이 회사 주가는 1만5000원선이었다.현재 대우건설의 주가는 채 6000원에 못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비금융자회사의 신속한 매각을 주문하고 있다.
산은은 성급한 매각은 자칫 손실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시장에서 마땅한 매수자를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매각에 나설 경우 자칫 헐값 매각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한 금융계 인사는 “구조조정에 따른 자본확충을 이유로 비금융자회사 매각을 서두르는 정부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마땅한 매수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서둘러 매각한다면 오히려 손실을 더 키우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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