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등 청와대 국빈 만찬 케이터링(Catering),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전국 기능대회 금메달 획득 등 서병호 쉐라톤그랜드 워커힐 한식 조리장의 화려한 이력에 비해, 그의 미소는 수줍은 색시 처럼 순수하다.
아예 이마에 ‘나 시골 아저씨’라고 써붙이고 다닌다 싶을 정도이다. 그는 자신의 화려한 훈장들을 거론하자 겸연쩍어 한다. “운이 좋았고, 한식 세계화의 주역들인 스승님들께서 이름을 넣어줘서 그리 됐지요”라는 말만 한 채, 그 흔한 무용담도 털어놓지 않았다.
지난 3월14일은 남성이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지만,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 한식당 ‘온달’엔 희언(戱言)이 없었다. 이날은 바로 감사원 감사 보다 더 빡세다는 정기 위생검열의 날이었기에 분주했다.
닦은 곳을 또 닦고, 식재료의 신선도를 일일이 체크했다. 주방 밖의 직원들이 주방 안을 과학적으로 정밀 점검하고, 주방 내에서도 다른 직역끼리 크로스체크를 했다. 한숨을 돌리는 듯 하더니, 다시 이리, 저리로 금새 움직이던 서병호 조리장을 숨박꼭질 하듯 만나야 했다.
“정신이 없습니다. 요즘이야 닦는 부서가 따로 있지만, 예전에는 셰프가 청소, 위생점검까지 다 했지요. 아직도 명장들은 주방 청소를 손수 하십니다.”
방한 국빈들 만찬에 단골 출장요리
대한민국 최고 반열의 워커힐 호텔 조리장의 첫 마디는 청소였다. 국빈들 만찬에 단골 출장가는 서 조리장의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는 ‘먹방’ 보다 흥미롭다.
“뭐든 캐면 약초”이고, “인명은 제천(≠在天:재천)”이라는 충북 제천 태생인 서 조리장은 7남2녀 9남매 중 여덟 번째, 아들로는 여섯째이다.
9남매씩이나 낳은 이유는 어르신들의 애정이 돈독해서이기도 하지만, 농촌에서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 자식을 많이 두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어릴적 부터 잘 안다. 그래서 큰 형들은 시골에 남는 것을 당연시했고, 또래 중 상당수도 대를 잇는 농사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올림픽 유치 소식이 들리는 마당에 우물안 개구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친구들도 늘어가던 때였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바로 넷째형은 “여덟째야, 니는 튀거라. 서울로 가란 말이다. 올림픽이 열리고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 라고 떠드는 마당에…”
딸 적은 집안에서 여덟째는 어머니를 도와 집안 허드렛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고향의 부모 곁을 지키자는 생각도 있었기에 형의 당부는 ‘새로운 도전’의 불씨를 던졌다고 서 조리장을 회고했다.
대학에 제대로 도전해보자, 집안 살림이 어려우니 하루속히 부모님께 뭐든 장만해 드릴 수 있게 취직 잘 되는 특성화 대학으로 가자고 마음먹은 서병호군은 아시안게임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던 고 2때 다시 형으로부터 “요리사가 돼 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앞으로 외국 손님들이 엄청 올 텐데 요리사가 부족할거야.” 비록 과학적 진로상담은 아니지만 순수한 시골 소년답게 결정은 빨랐다.
어머니께서 콩을 멧돌에 간 뒤 간수로 콩즙을 굳혀 두부로 만들 때 도와주면서 신기해했던 일, 밥에 설탕을 넣으면 못 먹을 맛이지만 대추랑 엿기름을 넣은 약밥은 단데도 밥 보다 더 맛있는 이유를 캐물으며 흥미를 느꼈던 일 등 어릴 적 부엌에서의 영상이 떠올랐다. 너무도 재미 있었던 어머니 이옥란 여사(2013년 작고 당시 86세)와의 주방 추억은 그가 인생을 좌우할 진로를 정할 때 가졌던 생각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리사가 되는 길은 많기도 많지만, 촌사람들은 경희대 호텔경영대학의 전신인 경희호텔대학 조리과를 나와야만 요리사가 되는 줄 안다. 공부가 급했기에 ‘벼락 열공’ 끝에 당당히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서 조리장은 시의전서(是議全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조선요리법 등 요리서적 탐독했고, 요리 연습 보다 청소한 시간이 더 많아 모질었던 실습 등을 우직하게 거친 끝에, 업계 최고 직장인 워커힐호텔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요리는 농사입니다.” 서병호식 명제는 독특하다. 그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철학자’임을 금새 느낄 수 있다.
하나의 밀알을 제대로 싹 틔우기 위해 1년 내내 밭갈이, 북 주기, 쟁기질, 김매기 숱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농기구 정리, 이삭줍기, 곡물 창고 청소 등 허드렛일을 다 해야만 하는 것 처럼, 손님 앞에 자신있게 내놓을 요리도 식재료의 생육 살피기, 채취, 다듬기, 레시피 연구, 기미(氣味) 체크, 주방 청소, 요리복 정리, 위생 점검, 환기, 주방요원들의 팀워크 유지 등 온갖 일들을 거쳐야 완성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의 요리 철학은 이처럼 간명하면서도 깊다.
“천하에 새로운 요리는 없다.”
“우리 삼계탕의 닭 아이큐는 100이상…”
그가 문체부장관 표창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한식세계화를 위해 끊임없이 연구개발한 공로이다. 그런데 천하에 새로운 요리가 없다니, 의아해할 수도 있다.
서 조리장은 수만년 한식의 역사가 누적되면서 축적된 건강과학과 맛의 미학을 함부로 거스르면 안된다면서 진화와 개선을 위한 연구개발을 지속하되 축적된 지식의 근간을 흔들지는 말아야 함을 강조했다. 그가 한복녀 궁중요리연구원장을 가장 존경하는 이유는 바로 센세이션에 영합하지 않은채 전통의 뿌리를 지키고 창조적으로 계승하려는 자세때문이다.
“우리 삼계탕의 닭은 아이큐 100 이상이라든지….”
‘차별화’는 ‘세계화’의 초석이라는 것이 서 조리장의 지론이다. 그는 음식 연구개발의 결과물을 손님에게 옛날이야기 하듯 들려준다. 예를들어, “우리 닭 아이큐가 높은데, 똑똑한 이 놈이 알아서 맛을 내더라구요”라는 식의 흥미롭고도 설명력 있는 차별화는 서병호 연구개발팀의 핵심과제이다.
최근 그가 연구개발해 내놓은 ‘소 한마리 곰탕’은 ‘7색 따로국물 곰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우설은 철분이 많고, 소꼬리와 우족은 젤라틴 성분이 많아 쫄깃하다. 힘줄은 사람의 관절기능을 개선한다. 그래서 7가지 부위별로 따로 국물을 냄으로써, 짬뽕해 끓였을때 국물의 텁텁함을 없애 깔끔하게 하고, 개별 부위의 장점이 모두 살아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연구개발은 거의 매일 이뤄지고, 한달에 한 번 연구개발 결과회의 및 품평회를 갖는다. 그가 지향하는 요리는 한방의 메카 제천 출신답게 ‘약이 되는 음식’이다. 이는 “음식만으로 환자를 고칠 수 있다면 약은 약통안에 그냥 두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음식테라피 철학과 맥락이 닿는다. 서병호팀이 개발한 ‘우엉ㆍ곤약 산채비빔밥’이 맛있는 약(藥)음식의 예가 될수 있겠다.
건강과 맛을 모두 얻으려는 그의 음식 연구개발 행보는 자연스럽게 조미료 전략으로 이어진다. 서 조리장은 “조미료 맛에 길들여지면 재료의 참맛을 즐길 수 없게 된다”면서 양지육수와 모시조개가 자신이 즐겨쓰는 자연조미료라고 소개했다.
서병호의 한식은 아시아, 유럽, 미주 등 한국을 방문한 각국 정상들에게서 호평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시진핑 주석 일행은 2014년 방한때 홍삼 화계선, 장향양갈비구이, 삼색전유화, 궁중버섯잡채, 해물면 신선로, 최종현 SK그룹회장이 생전에 만든 김치연구소의 ‘수펙스 김치’ 등 서병호팀이 차린 요리를 말끔히 비웠다는 후문이다.
서 조리장은 “우리 전통의 맛을 전해드리는 것은 외국 정상께서 우리 문화를 쉽게 이해하고 체험하는 소통의 수단”이라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진리를 수십차례 국빈만찬 케이터링을 통해 알게됐다”고 전했다.
‘음식에 대한 사랑 처럼 진실된 사랑은 없다’고 했던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큰 딸 정인(13)양은 서병호 음식의 시어머니 노릇을 한다. 애정이 묻어있는 그녀의 ‘기미(氣味) 품평’은 반성의 기회와 기쁨을 모두 선사한다.
“딸이 맛있다고 해주면 기분 최고”
“딸이 맛있다고 해주면, 최고로 기분이 좋지요.”
딸 바보 서 조리장에게도 풍수지탄(風樹之嘆)이 있다. 자신을 요리사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어머니가 3년전 돌아가실때까지 자기 손으로 왕후같은 밥상을 한번도 차려드리지 못한데 대한 회한이다. 서 조리장은 “가끔 어머니 산소에 들르면, ‘요리사라는 자가 어머니 밥상 한 번 제대로 못 차려드리고…’라는 마음이 든다”고 말한 뒤 잠시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목청을 가다듬기도 했다.
“제가 어머니 보다 요리를 잘하는데, 고향에만 가면 배를 두드리며 과식을 하게되는 이유는 바로 어머니의 사랑을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남으신 아버지(90)가 좀 엄하시긴해도 나중에 제가 차린 음식을 대접할 용기가 생기겠지요.”
그는 음식 연구개발의 대미를 고향 제천에서 장식하고 싶다는 꿈도 털어놓았다. 그때가 되면 엄한 부친도 “병호야, 참 맛이 있구나. 무엇으로 만들었느냐”라면서 자애로운 임금님 같은 한마디를 건네주실지도 모른다.
서 조리장에게 ‘요리는 ○○이다’라는 정의를 물었다. 문학적인 답변을 기대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성실’이라는 답이었다. 성실의 여러 실천덕목 중에서도 ‘늘 감각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첫 손에 꼽았다. 길을 걷다가도 보고 느낀 것을 레시피에 투영하려는 노력, 맛과 건강의 양립이라는 목표에 조금이라도 근접해보는 도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 조리장은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먹방’이 센세이션에 그치지 말고 선용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 제작진이 좀 더 신중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하기를 바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글ㆍ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