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첫 아프리카 출신 유엔 사무총장인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전 이집트 국무장관이 93세 일기로 별세했다.

유엔은 16일(현지시간) 부트로스-갈리 전 사무총장이 조국인 이집트 카이로에서 숨졌다고 공식 발표했다.

부트로스-갈리 전 사무총장은 냉전 체제가 붕괴된 직후인 1992~1996년 유엔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아프리카 출신 첫 유엔 수장으로 재임기간 미국과 갈등으로 재선이 좌절된 사무총장이다. 재임기간인 1993년 12월에는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고인은 카이로 알 살람 병원에서 숨졌지만 사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자녀는 없고 유족으로 부인 레이아 마리아 여사가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그가 유엔을 이끌었던 기간은 유엔 역사상 가장 혼란스럽고 도전을 받던 시기”라면서 “유엔에 대한 그의 헌신은 너무나 분명하며 그가 남긴 족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부트로스-갈리 전 총장은 1992년 11월14일 카이로에서 태어났다. 이집트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기독교 종파인 ‘콥트교’ 집안으로 조부가 이집트 총리를 지낸 명문가였다.

고인은 카이로 대학을 마친 후 프랑스와 미국에서 유학했다. 영어와 불어에 능통했고 서방통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직업 외교관이 된 고인은 14년 동안 이집트 외무담당 국무장관을 지냈다. 1977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수행했고 이듬해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이끌어내는데 실무적인 역할을 했다.

중동 사태 해결의 적임자라는 기대 속에 1992년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지만 ‘입김’이 센 미국과 충돌하면서 5년 단임에 그쳤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기아 해결을 위해 내전을 무릅쓰고 대규모 인도적 지원에 나섰으나 1993년 미군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미 정부와의 관계가 나빠졌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재하는 과정에서도 미국과 마찰을 빚었고, 미국이 체납한 유엔 분담금 10억달러에 대한 납부 요구도 악재로 작용했다.

유엔이 반대한 보스니아 내전(1992년)에 개입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고 대규모 인도적 지원에 나섰던 소말리아 사태(1993년)까지 악화되면서 유엔의 평화유지 능력에 대한 비난이 제기됐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유엔을 효율화시키는 개혁을 하지 못했다고 그의 리더십을 비판했고, 부트로스-갈리 전 사무총장은 미국을 패망한 ‘로마제국’에 비교하면서 쓴소리를 내뱉었다.

결국 1996년 11월 재선을 위한 안전보장이사회 투표에서 찬성 14표, 반대 1표를 얻었지만,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부결됐고 코피 아난 새 사무총장에게 자리를 내줬다.

부트로스-갈리 전 사무총장은 재선 실패 후 인터뷰에서 “로마시대처럼 그들(안보리)에게는 외교가 없다. 그렇게 강력하면 외교가 필요없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골리앗과 싸울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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