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문재인은 ‘부름받아 나선 이 몸’이다. 안철수는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국민들의 갑갑함을 풀어주지 못하는 정치현실에 대한 실망이 나에 대한 기대로 모아진 것…내가 정치에 참여하느냐 않느냐는 내 욕심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입문은 소명(calling)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다. 문재인은 그의 책 ‘문재인의 운명’에서 “당신(노무현)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하게 됐다”고 적었다. 노무현의 유지(遺志) ‘사람사는 세상’을 펼쳐보겠다는 소명으로 정치를 업으로 받아들였다는 고백이다.
둘이 새 정치의 화신으로 부름받은 건 ‘맑은 영혼’ 이미지 덕이다. 안철수는 의사ㆍ벤처기업가ㆍ대학교수의 행로를 지나면서 지식인과 기업가의 사회적 책무에 충실하려 했다. 컴퓨터 바이러스 무료백신 보급, 안랩주식 절반 사회환원, 청년들의 진로를 밝혀주는 청춘콘서트 등이 그러하다. 그는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 당시 50%의 지지도로 당선이 유력했으나 5% 지지도의 박원순에게 후보 자리를 내주는 ‘아름다운 양보’로 민심을 얻었다. 노무현의 집권 대장정에 동반자였던 문재인은 순수한 열정이 큰 자산이었다. “권력욕이 없는 게 유일한 약점”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다. 그 약점이 강점이 돼 손학규 등 쟁쟁한 선발 경쟁자를 제치고 18대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었다.
둘이 ‘희망의 정치’를 소명으로 받은 지 어느 덧 3,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 이들은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국민의 희망대로 구체제의 낡은 틀을 부수고 새 정치의 벽돌 한 장 이라도 올려놓았는가. 독일의 정치 철학자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함께 가져야 한다고 했다. 반듯한 신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신념을 현실세계에서 이뤄내야 한다는 뜻이다. 베버의 잣대로 평가하면 둘의 정치 성적표는 참담하다.
둘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제1야당의 대표를 지냈다. 야권의 원ㆍ투 펀치가 합체했으니 ‘선거의 여왕’ 에 결정적 한 방을 날릴 거라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둘은 물과 기름 처럼 섞이지 못했다. 당내 헤게머니와 공천권을 놓고 각 계파가 각자도생의 살육적 싸움을 벌여도 통합과 공존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둘은 평소 구정치의 폐해로 계파 패권주의, 지역 할거주의, 시대착오적 특권의식, 경제성장에 대한 무능, 부정ㆍ부패 등을 들었다. 요즘 제1야당에서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장면이다. 그러니 선거전마다 연전연패다. 박근혜 정부가 마구 헛발질을 해대도 표가 오지 않는다. 오죽하면 ‘야당 복(福)’ 이 박 대통령이 받은 가장 큰 복이라는 얘기가 나오겠는가.
성서를 보면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오른다. 이내 풍랑을 만나게 되고 사흘간 고래 뱃속에 갇히는 시련을 겪는다. 부름받아 정치에 나섰다는 두 사람이 지금처럼 소명의식을 저버리고 딴 길로 간다면 민심의 풍랑이 정치생명을 삼켜버릴 지 모른다. 청년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전하던 안철수, 대의 앞에 기득권을 헌신짝처럼 버리던 ‘바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너무 늦기 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