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56돌 진보쵸 고서점 100만권 출품 화보등 미술서적도 많아 외국인 발길 희귀한 초판본 전시·라이브토크 행사도

파리의 셰익스피어 & 컴퍼니, 뉴욕의 스트랜드 서점은 프랑스와 미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고서점들이다. ‘오래된 고서점’들은 그 나라의 지성과 문화를 상징하는 자랑거리로 자리매김되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많은 고서점들이 한데 모여 대규모 고서점가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로 영국 런던의 채링 크로스 로드(Charing Cross Road)와 일본 도쿄의 간다진보쵸(神田神保町)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약 140개의 고서점을 포함, 200여개의 서점이 모여 있는 도쿄의 진보쵸는 규모면에서 세계 최고의 고서점가이다. 도쿄 전체 고서점의 약 3분의 1이 이곳에 모여 있다고 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에 모여 있는 고서점들의 특징은 대부분의 서점이 특별한 테마로 특화되어 있는 점이다. 그 테마는 문학, 역사, 철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연극, 음악, 미술, 서양서, 염가본 등 실로 다양하고 전문적이다.

1880년대 인근 지역에 메이지법률학교(메이지대학의 전신), 영길리법률학교(쥬오대학의 전신), 센슈학교(센슈대학의 전신) 등 법률전문학교가 잇달아 생겨나면서 법률서적을 중심으로 한 학생 대상 서점들이 생겨나면서 형성된 진보쵸의 고서점가에는 창립 100년을 훌쩍 넘는 아주 오래된 고서점들이 즐비하다.

이곳에선 매년 가을 ‘도쿄 명물 간다 고서축제’(이하 ‘고서축제’)가 열린다. 전국의 지역별로 다양한 축제가 존재하며, 각 지역별로 대표적인 대규모 축제만 해도 600여개를 훌쩍 넘는다는 ‘축제의 나라’ 일본에서도 고서 축제는 지식과 문화를 소재로 한 이색적이고 특별한 축제이다.

어느덧 올해로 56회째를 맞은 고서축제에는 인근 고서점 약 100여 점포가 참가해 총 100만 권이 넘는 고서를 출품했다. 이 행사의 최고 중심은 진보쵸 야스쿠니거리 대로변에 가판을 설치하고 실시하는 고서 할인행사다. 약 500m의 대로변에 각 고서 점에서 설치한 고서 할인판매 부스가 늘어서 장관을 이룬다.

노점 도서전 행사 이외에도 옛날의 진보쵸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전, 도장 장인들이 참가해 펼치는 장서인(藏書印) 축제, 고서적상의 경매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체리티 옥션, 평소에 구경하기 어려운 초판본, 희귀본 등을 전시 및 판매까지 하는 특선고서 판매행사, 전통지 공예 이벤트, 책을 소재로 한 라이브 토크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책’을 소재로 한 행사이니 만큼 일본어를 알지 못하는 외국인에게는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화집을 비롯한 미술관련 서적, 잡지 등 언어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책들도 많아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눈에 띈다. 각 나라에서 개최되고 있는 국제도서전류의 행사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흥밋거리가 아닐 수 없다.

올해에는 지난 10월23일에서 11월1일까지 2주간 행사가 개최됐다. 행사 마지막 주의 주말 이틀간은 ‘진보쵸 북페스티벌’이라는 작은 고서축제가 열려 길거리 공연, 음식 판매 포장마차 등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2기 아베 정권 들어 엔화약세를 통한 수출증대를 기본 골자로 한 이른바 아베노믹스가 본격화되면서 일본은 인바운드 관광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점포 현장에서 8%의 소비세를 환급해 주는 현장 면세제도는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일본의 정책적 노력과 엔화 약세 및 중국인 해외관광의 수요증대가 맞물려 올해 일본의 인바운드 관광은 가히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일본의 인바운드 관광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중국인 관광객이고, 중국인의 일본 관광 패턴이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폭풍쇼핑’으로 대변되는 쇼핑 일변도이다 보니, ‘관광업이 아니라 유통업’이라는 즐거운 푸념까지 일본 국내에서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 인바운드 관광업계가 메르스의 발생에 따른 중국인 관광객 급감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며 얻은 교훈은, 지속적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는 다양한 나라에서 관광객을 유치해야 하고, 다양한 관광의 테마를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계적인 관광대국의 공통점은 이 나라들의 잘 정비된 관광 인프라도, 저렴한 물가도 아닌 바로 그 나라가 갖고 있는 문화, 즉 오래된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 나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있는 것이 아닐까. 문화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미술품 같이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다양한 서적이 생산, 유통되고 소비되며 이것이 가치 있는 중고품으로 리사이클링되는 고서점과 같은 무형의 문화는 잔잔하지만 더욱 큰 감흥을 주는 것 같다. 일본의 서점 문화와 고서축제는 지속 가능한 관광소재를 고민하는 우리에게도 좋은 시사점을 주는 것 같다.

강중석 한국관광공사 일본지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