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더 랍스터’는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는 호텔이 배경이다. 독특한 설정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은 쉽게 그려진다. 사랑의 감정을 느껴서 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으려면 커플부터 되고 보자는 웃지 못할 상황 말이다. 더 나아가 영화는 자유의지와 감정이 통제당할 때, 인간이 얼마나 초라하고 우스워질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단 ‘하나’ 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왜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지를 역설한다.
아내에게 버림받은 데이비드(콜린 파렐 분)는 기묘한 커플 메이킹 호텔을 찾는다. 그의 형은 앞서 호텔에 들어갔다가 짝을 찾지 못해 ‘개’로 변했다. 형의 ‘비극’을 목도한 지라 더욱 비장하다. 데이비드는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단 하나 만을 선택할 것을 강요 당한다. 신발 사이즈가 ‘44반’이라고 하자, 44와 45 밖에 없으니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마련된 셔츠도 흰색과 푸른색 두 가지가 전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의 프로필을 기재하던 호텔 직원은 그에게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중 성적 취향을 택일하라고 종용한다. 과거 남자와 한 번 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던 데이비드는 잠시 고민하다 결국 ‘이성애자’를 선택한다.
사실 신발 사이즈나 셔츠의 색상을 선택하는 문제야 심각할 것 없다. 신발은 반 사이즈 크게 신으면 될 일이고, 패션 취향은 조금 양보하면 될 일이다. 다만, 감정의 문제는 의지로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에 맞는 짝이 없으면 45일이 아니라 450일, 4500일도 홀로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 호텔은 단순히 연애를 장려하는 곳이 아니라, 커플 만을 절대 선으로 간주한다. 입소자(?)들에게 혼자보다 둘이 좋은 이유를 끊임 없이 세뇌시킨다. 짝이 없더라도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이를테면 자위와 같은-방법을 취했을 때는 철저하게 처벌한다. 짝을 찾지 못하는 ‘열등생’은 (동물로 살아야한다는) 협박을 받고 모욕당한다.
결국 호텔에 들어온 이들은 사랑은 뒷전이고 맹목적으로 짝을 찾기에 혈안이 된다. 존(벤 위쇼 분)은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자와 공통점을 만들기 위해 고의로 머리를 부딪히는 고통을 참아낸다. ‘동물이 돼 다른 동물에게 먹히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이다. 데이비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를 짝으로 선택한 뒤, 자신도 냉혈한인 척 연기한다. 그 와중에 짝이 되지 못한 한 여자는 창 밖으로 몸을 내던진다. 오직 동물이 되지 않으려고 커플이 되고자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가까스로 호텔에서 도망친 데이비드가 다다른 숲은 반대로 ‘솔로 천국’이다. 이곳도 부조리하긴 매한가지. 구성원들 사이에 감정이 생기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고, 커플인 사실이 들통나면 끔찍한 벌을 받는다. 심지어 함께 춤 추는 것도 금지다. 파티 때도 각자 이어폰을 꽂고 일렉트로닉 음악에 몸을 맡긴다. 데이비드는 하필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짝을 숲에서 만난다. 이제 그는 커플이 아닌 척 하느라 분투한다. 급기야 둘 만의 암호를 만들어 몸짓 만으로 대화하는데,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애잔하다. 불행하게도 비밀은 들통나고, 숲의 우두머리는 커플을 갈라놓을 음모를 꾸민다.
‘더 랍스터’를 장르로 따지자면 블랙코미디에 가까워 보인다. 영화니까 가능한 허무맹랑한 세상이라도, 그 안에 놓인 이들은 심각할 수 밖에 없다. 밖에서 보기엔 황당하고 우스운 상황들인데, 인물들은 한껏 진지하기 때문에 웃음이 나는 것이다. 과장되고 극적인 음악이 풍성하게 쓰이는 것도 코미디에 한 몫을 한다. 호텔 일과 중엔 ‘외톨이’ 사냥(잘 하면 유예기간이 늘어난다)이 있다. 기껏해야 마취총을 들고 원피스 차림으로 나서는데, 결연한 표정의 클로즈업, 슬로우 모션 화면과 비장한 음악이 어우러지니 목숨 걸고 전장에 나서는 이들처럼 보인다.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강요 당하는 상황에선 누구라도 절박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