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硏, 영국 사례 보고서
계좌이동제가 국내 대형은행의 ‘무덤’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의 경우 소매고객과 은행과의 관계금융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계좌이동제가 영국보다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금융권의 대책마련도 분주해지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계좌이동제 도입과 영국은행의 엇갈린 명암’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2013년 9월 신계좌이동제를 도입한 후 올 3월까지 175만건의 계좌이동이 발생했다.
대형은행인 바클레이스(Barclays)는 작년 한 해 동안 약 4만 계좌가 유입되고, 12만 계좌가 빠져나가 8만명 이상의 고객을 잃었다. 로이즈(Lloyds)도 5만 계좌, 낫웨스트(Natwest)는 7만 계좌가 순유출됐다.
반면에 중소형 은행인 산탄데르는 17만 계좌, 할리팍스는 15만 계좌의 순유입을기록해 지난해 전체 계좌 이동 건수(약 110만건)의 30%를 차지했다.
산탄데르는 예금 잔액에 최고 연 3%의 금리를 주고 핸드폰 요금이나 가스비 결제 등에 대해 1~3%의 캐시백 서비스를 제공하며 고객 유치에 성공했다. 할리팍스도 계좌이동 시 일시금으로 125유로를 주고, 일정 금액 이상의 잔액을 유지하면 매달 5유로의 현금 인센티브를 적용해 큰 호응을 얻었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계좌이동제 도입 관련 주요 이슈와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계좌이동제를 먼저 도입한 영국의 경우 소매고객과의 관계금융이 강하게 형성된 관계로 계좌이동 서비스 이용이 활발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반면 은행과의 관계금융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국내에서는 계좌이동 서비스가 영국보다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특히 계좌이동제가 시행되면 기존 고객 이탈로 은행 간 차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그 결과 은행산업의 재편이 발생하거나, 고객이동은 크게 이뤄지지 않지만 기존고객을 유지하려는 은행 노력이 커지면서 고객만족도가 높아지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는 “두 시나리오 모두 은행의 수익성에는 단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정보기술(IT) 인프라를 보완하는데 지출이 필요하고 유치 경쟁으로 예금조달 비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 “은행은 수수료 무제한 면제 등의 단편적인 혜택으로는 신규고객 유치는 고사하고 기존고객 이탈을 막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묶음상품 제공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은행들이 고객 유치과정에서 금리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에 직면하고 수시입출금식 예금 규모의 변동성 증가에 따른 유동성 리스크가 커질 수 있으므로 감독 당국도 이에 대한 모니터링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석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