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익명의 섬’의 등장인물 깨철은 늘 덜떨어진 팔푼이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마을의 아낙네들은 “누가 깨철이를 닮은 애를 나았다” 등의 음담을 주고 받으며, 동범자끼리만 알 수 있는 야릇한 눈빛도 서로 보낸다.

어느 비 오는 날 깨철은 소설의 주인공인 마을 학교의 여교사를 덮친다. 평소와 다른 냉철한 얼굴로 “다른 여자들도 너처럼 (처음에는)반항하더라”고 말한다.

여교사는 마을 여자들도 다 깨철과 정을 통해 왔음을 파악하게 된다.

최근 밝혀진 서울의 한 공립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연쇄 성추행ㆍ성희롱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문득 이 소설이 떠올랐다. 130여명의 피해자가 나올 때까지 1년 넘게 사건이 감춰져 있었던 탓일 것이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성추행ㆍ성희롱 피해자에게 감히 발설할 수 없는 소설 속 마을같은 ’비밀의 장막‘을 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중 상당수는 학교로 대표되는 교육계를 폐쇄적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교단 특유의 온정주의, 가부장적인 문화가 학교라는 공동체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사가 성추행을 저질러도 현직에 남을 수 있는 ’솜방망이 처벌‘은 ’제 식구 감싸기’에만 신경쓰는 교육계의 관행에서 비롯됐다. 민현주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미성년자 혹은 성인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교사 240명 중 교직을 떠나야 하는 해임ㆍ파면을 받은 사람은 43.3%(104명)에 불과했다.

사실 교육부부터 시ㆍ도교육청, 일선 학교까지 교사들은 대부분 교원 양성 기관이라는 교육대 또는 일반대 사범대학 출신이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출신지로 발령받는 경우가 많아 동료 교사들과 지연은 물론 학연으로도 얽혀 성추행을 당하거나 불합리한 징계 등을 받아도 입 밖에 내지 못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학교가, 교육계가 ‘익명의 섬’처럼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남이가’ 같은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그것만이 교육계 구성원의 감수성을 깨우고 사건 재발을 막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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