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그리스의 경제 위기와 이에 따른 이른바 그렉시트(Grexitㆍ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의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스의 경제 위기는 단순히 유럽 남부 한 나라의 위기만이 아니다. 유로를 사용하는 유로존 18개국의 위기이자, 유럽연합(EU) 28개국 전체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유럽연합이 탄생한 토대인 유럽의 경제적 연합이 붕괴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탄이다.

유럽의 경제적 연합이 무너지면 유럽연합 역시 존립할 수 없다. 전체 유럽의 통합과 정체성을 담보하는 시금석의 역할을 하고 있는 유럽연합이 붕괴하면 유럽이라는 공동체가 허무한 꿈이었음을 광고하는 셈이고, 유럽은 좌절과 정체의 상징이자 비웃음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런 까닭에 유럽연합은 그렉시트를 막으려고 노력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그리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채무국인 그리스가 오히려 강력 반발하고 채권국들은 회의와 협상을 거듭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주요 채권국인 독일의 태도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모습인데 이 부분은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현재 유럽연합 내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경제를 중심으로 성립된 유럽연합의 성격으로 보면 가장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그리스 총리를 굴복시키고 그리스에 더 강력한 긴축과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독일이 비난 받는 지점이 여기인데, 역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은 물론이고 유럽연합의 주요 동맹인 프랑스조차 공식적으로는 독일과 보조를 맞추지만 심정적으로 그리스를 이해한다는 태도를 비추고 있다.

항상 한 발을 대서양 건너 미국에 두고 있는 영국은 노골적으로 독일의 태도를 비난하고 유럽연합의 탈퇴 가능성을 언제라도 언급한다. 독일 정부는 자신들의 요구가 원칙에 근거한 합리적 내용임에도 비난을 받는 것이 억울할 것이다. 그리스 경제 위기가 시작되자 일부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1년에 한두 번 파티를 한다면 365일 파티를 하는 그리스인들이 위기를 맞는 건 당연하다고 꼬집었다. 이런 시각이 메르켈 정부에도 존재함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다. 경제적 합리성이 항상 삶과 문화의 가치를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는 경제의 관점으로 보면 한 사회 구성원들의 겉으로 보기에 비합리적인 생각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비합리성은 많은 경우 그 사회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환경에 기인한다.

이 경우 그들에게 경제적 효용성만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그들 문화적 정체성을 지우도록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제적 합리성은 한 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정도까지만 허락돼야 한다. 그 이상의 경우는 경제적 효용성보다 문화적 가치가 더 우선되어야 인간의 삶은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의 경제 위기는 이런 면에서 보면 그리스에게 강요된 경제적 합리성과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이 충돌하는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의 반발은 이런 맥락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 또 그렉시트가 현실화된다면 그리스의 유럽연합 탈퇴도 가능할 것이며, 이때는 유럽연합의 유럽적 문화 정체성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리스의 문화적 정체성은 유럽의 문화적 정체성에 필수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독일이 상대의 문화와 삶을 무시한 채 경제적 합리성의 주역을 자임한다면 그것은 득보다 실이 많은 장사임을 알아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악몽을 씻고 세계적 문화국가의 위치에 설 수 있게 된 독일의 노력을 감안하면 그리스의 경제 위기는 어쩌면 문화국가 독일의 위기라고 할 수도 있다. 독일은 그들이 자랑하는 모젤 와인의 맛만큼이나 그리스인들이 자랑하는 크레타 와인의 맛도 맛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일의 문화적 역량이 그 정도는 충분히 될 것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