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발생 비밀 밝혀낼 한-EU 글로벌 협력 시작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기초과학연구원(IBS) 구본경 유전체교정 연구단 단장이 유럽연구위원회(ERC)의 기초연구 지원 프로그램인 ERC 시너지 그랜트(Synergy Grant) 2024에 선정됐다. 국내 기관 소속 연구자가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본경 단장을 포함해 한-유럽 4개 연구그룹으로 조직된 클론이스케이프(ClonEScape)팀에게 6년간 총 1천만 유로(한화 약 149억)가 지원된다.
구본경 단장은 유전자 교정 기법을 활용하여 제작한 생쥐 및 오가노이드(유사장기) 모델을 이용한 위장관 내 성체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 대표적으로 구 단장이 고안한 모자이크 유전학을 통해 생쥐 모델로 암 발생 초기 단계를 추적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2022년과 2023년에는 글로벌 학술정보서비스 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HCR, Highly Cited Researcher)’로 꼽히기도 했다.
ERC 시너지 그랜트는 유럽연합(EU) 최대 연구 및 혁신 프레임워크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에 포함된 연구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다. 다학제적 협력 연구를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협력해 기존의 연구 한계를 넘어서는 혁신적인 성과를 도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총예산이 약 160억 유로에 달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초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이번 ERC 시너지 그랜트 2024에는 구 단장을 비롯한 전 세계 24개국에서 57개 팀, 201명이 선정됐으며, 한국‧미국‧호주 등 비유럽 국가 소속 연구자들도 포함됐다. 특히 구 단장은 2015년에 신진 연구자를 지원하는 ERC 스타팅 그랜트(Starting Grant)에 선정된 데 이어 두 번째 ERC 그랜트에 선정된 것으로, 연구의 독창성과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을 다시금 입증했다.
구 단장은 2025년부터 벤저민 사이먼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마리아 알코레아 케임브리지 줄기세포 연구소 그룹리더, 다니엘 슈탕거 독일 드레스덴공과대 의대 교수와 함께 모자이크 유전학을 활용한 암 발생 기전 연구를 수행할 예정이다.
연구진은 암을 일으키는 클론을 최초 세포부터 추적해 암 씨앗 세포가 어떻게 인체의 면역 장벽을 뚫고 암세포 클론으로 성장하는지, 이 클론이 자라 어떻게 다른 세포와 경쟁하거나 다양한 변이를 축적해 암으로 성장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밝혀낼 계획이다. 이렇게 암 초기 발생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역으로, 암의 예방, 조기 진단, 치료법 개발에 기여할 수 있는 기초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마리아 렙틴 유럽연구위원회 의장은 “여러 학문과 국가, 심지어 대륙을 넘어선 뛰어난 연구자들이 ERC 시너지 그랜트를 통해 한 팀이 돼 난제 해결을 목표로 협력한다”며 “선정자 모두에 축하를 전하며, 이들이 지식의 경계를 넓혀가는 과정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본경 단장은 “암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각기 다른 분야에서 세계적 역량을 가진 연구자들과 협력해 암의 기원을 이해하고, 질병의 진행 과정을 혁신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매우 기쁘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