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함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삶의 눈부심은 결코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2014년 5월 한강,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 중)
“축제처럼 헤어지고 따뜻하게 다시 만나요”(2023년 2월, 서점 ‘오늘’)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한강 작가로 발표된 그날, 놀라움이 진정되고선 그에 관한 두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10여년 전 인터뷰와, 지난해 2월 작가가 아들과 함께 운영하는 서점 문 앞에 내붙었던 쪽지다. ‘책방 오늘’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 양재동에 있다가 통의동으로 옮겼다. A4 용지의 쪽지는 서점의 이사와 마지막 행사를 알리는 글이었다. 작가가 직접 쓴 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 장식없이 똑같은 크기 똑같은 글자체로 쓰여진 알림글은 그의 말결과 차분한 목소리를 빼닯았다. 손님들과 갖는 마지막 행사의 이름은 ‘우리가 읽은 것들’이었고, 그동안 손님들이 책을 살 때마다 도장을 찍어줬던 독서카드는 자리를 옮겨 문을 여는 서점에서 ‘재회 쿠폰’이 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인삿말로는 축제같은 이별과 따뜻한 재회를 약속했다.
작가는 꽤 오랜 동안 양재동 인근에서 살았던 모양이다. 인터뷰 때 작가는 자주 운동삼아 양재천변을 다닌다고 했다. 그게 산책이었는지, 조깅이었는지, 자전거 타기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양재천변의 풍경을 화제 삼아 같은 동네의 기자와 “이미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다”며 서로 얘기했던 기억은 선명하다. 양재천변은 작가의 소설 중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에서도 짧은 에피소드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한강 작가를 인터뷰한 것은 ‘세월호 참사’가 있고 한달여가 흐른 2014년 5월의 어느 날이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소재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발간을 즈음해서였다. 볕이 좋은 날 오후 서울 사당동의 어느 카페였다. 그의 말과 웃음은 또렷한데, 옷차림은 기억이 나지 않아 당시 찍은 사진을 보니 검은 색 티셔츠에 회색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사진이 신문과 방송, 온라인에 매일같이 등장하는 최근 2~3주 사이 그가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있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소년이 온다’를 인터뷰하던 당시, 눈을 버젓이 뜨고서도 수백명의 아까운 목숨이 바다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우리 사회의 공기는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무너지지 않고 담담해지려고 했고, 서로 따스해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없이 차분한 억양과 따스한 미소를 가진 작가와의 인터뷰 공기도 그와 같지 않았나 싶다. 작가와 기자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이자 화학자인 프레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 이후 10년이 넘게 흘렀고 그 사이에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영국 맨부커상(인터내셔널)을 받았으며 새로운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냈고 노벨문학상을 받게 됐다. 작가가 “‘소년이 온다’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작품”이라고 설명한 ‘작별하지 않는다’ 이후 상을 받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와 유족의 이야기를 다뤘으며 한림원 노벨위원회에서는 수상자 선정 이유로 ‘역사적 트라우마’를 말 첫 머리에 내세웠다. 이제는 전국민이 외울 정도로 잘 알려진 문구가 됐지만 다시 한번 환기하자면 노벨위원회는 한강의 작품세계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기렸다.
“역사의 참혹함을 통과하지 않고서 삶의 눈부심을 쓸 수 없다”
“2011년 펴낸 전작 ‘희랍어시간’은 시력 잃은 남자와 청각 잃은 여자의 이야기였어요. 저는 인간의 가장 연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면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글이었죠. 그 다음엔 인간의 가장 밝고 눈부신 삶에 대한 소설을 쓰고자 했고, 제목까지 지어놓았습니다. 하지만 1년 이상을 뒤척였습니다. 왜 안 됐을까 제 내면을 들여다 보았죠. 제가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공포를 마주했습니다. 1980년의 광주의 기억이었습니다. 인간이 왜 인간에게 그렇게 끔찍한 짓을 할까? 이 참혹함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삶의 눈부심은 결코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10여년전 인터뷰에서 한강의 한 말이다. 한강은 광주에서 태어나 5·18 직전 서울로 올라와 자랐는데, 광주의 옛 집을 샀던 이의 열 대엿살 된 아들이 희생됐다고 어른들끼리 숨죽여 나누던 얘기를 들었던 게 소설을 쓰게 한 ‘원형적 체험’이 됐다. ‘소년이 온다’는 5·18 당시 도청에 남아있다가 진압군에 희생된 소년의 이야기를, 역사의 현장에 있었고 소년을 알았던 다양한 이들의 시점과 목소리로 그려냈다.
‘소년이 온다’의 첫 문장은 ‘비가 올 것 같아’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화자 ‘나’는 2014년 봄에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작가다. 한강이 노벨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추천작을 묻는 질문에 “모든 작가들은 자신의 가장 최근 작품을 좋아한다”며 ‘작별하지 않는다’를 꼽고 ‘소년이 온다’를 직접적으로 연결된 작품이라고 한 이유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광주(작품 속에선 지명이 실명으로 나오지 않는다) 항쟁에 관한 책을 낸 후 개인적인 일까지 겹쳐 몸과 마음의 병을 심하게 앓는 ‘나’와 4·3사건으로 희생된 부모 가족의 내력을 좇는 제주 출신 여성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의 이야기를 담았다. 70여년 전 논밭에서 고꾸러지고 구덩이와 석탄갱에 묻혀졌으며 바다로 쓸려간 수많은 영문모를 죽음들,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육신이 찢겨졌던 무참한 희생들, 진실을 묻고 가두고 불태우려 했던 부정한 시대를 두 여성은 좇아가고 마주한다.
두 작품은 흉흉한 소문, 숨죽인 목소리로만 전해졌던 비극을 역사적 실체로서 확인하고 개인의 삶과 죽음으로 만나는 과정을 담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집단의 운명을 기록하는 일이 ‘역사’라면 역사 속에서 명멸한 개인의 개별적인 생, 그 희로애락을 상상으로 복원하는 일은 ‘문학’일 터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광주 항쟁의 한 복판에서 이름없이 희생된 소년의 삶을, 소년과 생의 몇 마디를 공유했던 이들의 전언으로 복원한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선 마치 물리학의 양자처럼 죽어 있으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존재, 저 곳에 있으면서 이 곳에도 깃들어 있는 존재, 서로의 응시와 교감으로 비로소 의미화되는 존재를 구현함으로써 역사의 상흔에 대한 ‘문학적 치유’를 시도한다.
역사와 민주주의의 진전을 토대로 한 예술의 성취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광주, 여성’ ‘우리들은 정의파다’ ‘오월애’ ‘5·18 자살자...심리부검 보고서’. 작가가 ‘소년이 온다’ 책 마지막 장에 ‘도움을 받은 자료’라며 감사를 표한 문서·영상 자료의 목록이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마지막 쪽에도 ‘제주 4·3생존자의 트라우마 그리고 미술치료’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 ‘벌레못굴, 그 끝없는 어둠 속에서’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지상에 숟가락 하나’ ‘기억의 전쟁’ 등 20여편 가까운 목록이 빼곡히 올려져 있다.
한강의 문학적 성취는 역사의 참혹함을 마주하고, 부정한 시대 참담한 정치를 넘어서 이루어졌다. 동시에 예술이라는 성채는 역사의 진실 규명과 민주주의의 진전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쌓아올려질 수 있다는 역설적 사실 또한 두 소설책 말미의 긴 참고자료 목록이 웅변한다. 한 시기의 역사와 정치는 강압과 폭력으로 진실을 감췄으나 또 다른 시기의 역사와 정치는 심연에 가라앉은 진실을 구조해내려는 ‘연약한 인간들’의 노력에 승복했다.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채록하고, 흔적없이 묻혔던 뼈와 함께 은폐됐던 문서를 발굴하려는 작업들이 없었다면, 그것을 허한 민주주의의 진전이 없었다면, 한강의 소설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강의 이전에도, 문학적 성취로는 우열을 따지기 어려운 작품과 작가들이 없었다고는 못할 것이다. 시대와 불화와 화해를 거듭하면서 한국 문학은 어느 언어권과도 비견할만큼 높고 넓은 탑을 쌓아올려왔고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닌 성채를 지어왔다. 그럼에도 노벨문학상은 왜 지금, 한강에게 주어졌을까.
먼저 영화·가요·드라마 등 이른바 ‘K-컬처’라고 불리는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에서 비롯된 한국어의 외연 확장을 주요 이유로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서구권에선 아시아 문화를 대표하는 중국, 일본에 묻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한국 문화가 비로소 독자성과 개별성을 발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화·문학의 ‘현대성’과 ‘보편성’에 대한 인정이라고 할 것이다. 이는 영화로 치자면 ‘임권택의 시대’에서 봉준호와 박찬욱, 그리고 ‘오징어 게임’의 시대로 전환한 것과 비견할만한 것이다.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일찌감치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AI는 반성하지 않는다...문학이 던지는 ‘인간 존엄의 질문’
올해 각 분야 노벨상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인공 지능(AI)이었다. 물리학상 수상자로는 AI 머신러닝의 기초를 확립한 존 홉필드와 제프리 힌턴이 선정됐고, 화학상은 AI를 이용한 단백질 구조 예측·설계의 공로로 데이비드 베이커와 데미스 허사비스, 존 점퍼에게 돌아갔다. 경제학상은 사회적 제도가 국가 번영 및 국가간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다론 아제모을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로빈슨에게 주어졌는데, 이중 아제모을루 교수는 최근 몇 년간 AI를 비롯한 신기술의 출현에 대한 연구에도 매진해왔다. 특히 그는 AI 신뢰성과 인간 노동력 대체 가능성에 의문을 표한 AI회의론자로도 유명하다. 물리학상의 힌턴, 화학상의 허사비스도 AI의 위험성을 경고해온 연구자다.
AI가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며 예측할 뿐 아니라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며 시와 소설을 창작하는 시대, 과연 인간이 창작하는 문학과 예술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한강의 말과 작품 속 몇 문장이 그 대답이 되지 않을까.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가상의 영국 인문학자 글을 빌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두고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물음”이라고도 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후 온 사회가 들썩였고, 대형 서점은 그의 작품으로 도배가 됐으며, 그의 책이 100만권 이상이 팔렸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예의 ‘제2, 제3의 한강’을 위한 조언, 한국 문학과 K컬처의 발전을 위한 제언도 넘쳤다.
그 속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없을까. 과연 우리는 한강의 질문을, 문학의 오랜 물음을 제대로 받아낸 것일까. 역사의 참혹함과 정치의 참담함을 넘어 한강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삶의 눈부심’을 만날 준비가 돼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