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ㆍ박혜림 기자]‘땅콩회항’ 사건으로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법원이 징역 1년을 선고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갑(甲)질’에 경종을 울렸다. 수면 아래 있던 비정상적 갑을 관계에 대한 분노가 박창진(44) 사무장의 ‘을(乙)의 반란’으로 마침내 표출했다는 분석이다.

우리 사회의 민낯도 드러났다. 여론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서 조 전 부사장은 재벌가 딸 최초로 구속기소, 실형까지 받게 됐지만, 피해자인 여승무원은 거꾸로 ‘마녀사냥’의 대상이 돼야했다.

▶갑질 논란 촉발 조현아, 뒤늦은 후회=기내 땅콩 서비스 때문에 이륙하려던 비행기를 돌려 박 사무장을 내리게 한 조 전 부사장의 비상식적 행동은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악용한 재벌의 ‘슈퍼 갑질’에 대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조 전 부사장이 또 재판 과정에서 박 사무장이 잘못했다는 뻔뻔한 태도를 보이자 분노는 더욱 들끓었다.

반면 회사에서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조 전 부사장의 기내 난동을 고발한 박 사무장의 행동은 ‘을의 반란’으로 비춰지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동안 말 못하고 설움을 참아야했던 을들을 대신해 갑과 맞서 싸웠다는 인식이 커졌다.

갑질 논란을 외면하는 듯했던 조 전 부사장은 결국 뒤늦은 후회를 해야했다. 그는 법원에 제출한 반성문에서 “제 모든 행동을 반성하고 좋은 사람, 타인이 베푸는 정을 아는 사람이 되겠다”며 “피해자들에게 정말로 미안하다”고 반성했다. 여론을 의식한 듯 “국민의 분노가 커서 저도 죄송하다, 반성한다는 말 외에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사진=헤럴드경제DB]
[사진=헤럴드경제DB]

[사진=헤럴드경제DB]

▶법원도 우려한 여론의 두 얼굴=최근 인터넷에는 승무원 김모(28) 씨가 입을 다무는 대가로 대한항공 측에서 교수직을 제안 받았다는 의혹이 확산됐다. 검찰 조사 후 입꼬리가 올라가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김 씨는 ‘악마의 미소’로 불리며 ‘신상털기’까지 당했다.

하지만 땅콩회항 사건을 심리한 서울서부지법 제12형사부(부장 오성우) 김 씨의 진술 내용이 박 사무장과 부합했다면서 이 같은 의혹에 선을 그었다. 이어 김 씨가 “정상적 사회생활 및 직장복귀는커녕 무서워서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고 피해를 호소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현재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박 사무장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재판부는 “사회적 지지와 보호는 일시적이며 국민들은 생계문제로 기억에서 금방 흐려지게 될 것”이라면서 “여론에 의한 사회적 지지가 사라짐에 따라 더 힘든 상황을 겪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직원 노예처럼 여겼다”는 재판부, 징역 1년 선고 왜?=재판부는 “한 사람을 위해 항공기를 돌린 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린 일이며, 지원을 노예처럼 여기지 않았다면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이라며 실형을 선고했다. 검찰이 적용한 혐의 다섯가지 중 가장 쟁점이 됐던 항공기항로변경죄를 포함, 네 가지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법조계에서는 이에 대해 ‘의외’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재판부가 조 전 부사장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만큼 검찰 구형과 가깝게 형을 선고할 가능성이 적잖았다는 것이다.

최진녕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조 전 부사장이 항로변경죄 외 대부분의 사실관계는 인정했다는 점, 재판부에 여섯차례나 반성문을 전달했다는 점 등을 참작한 것 같다”면서 “항로를 변경하긴 했지만 이륙 중 회항처럼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단 점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피해자들과의 합의는 없었지만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한 공탁금을 지불했다는 점도 양형에 참작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외려 “형이 과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반인이 조 전 부사장과 같은 혐의로 재판정에 섰다면 벌금형에 그쳤을 것을, ‘조 전 부사장이기 때문에’ 실형까지 선고받았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이렇게까지 사건이 언론의 조명을 받을 줄은 몰랐다”면서 “재판부가 여론을 의식해 실형을 선고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항소심서 집행유예 가능성은?=조 전 부사장의 항소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조 전 부사장의 변호를 맡은 서창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판결문을 검토한 뒤 조 전 부사장 측과 협의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가 나올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노영희 대한변협 수석대변인은 “조 전 부사장의 진지한 반성이 부족했단 점이 양형에 영향을 끼친 만큼 현실적으로 반성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항소로 이어질 경우 조 전 부사장 측이 피해자들과 적극적인 합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재판에서는 이미 드러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되 다시금 항로 해석 등 법리적인 문제를 끌고 올 가능성이 크다.

조 전 부사장의 미결 구금기간을 문제삼을 수도 있다. 조 전 부사장은 구속 후 1심 선고까지 이미 45일간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 2심으로 넘어가면 미결 구금기간이 최소 30일 이상 늘어나게 되는데, 변호인 측은 이를 두고 “사실상 처벌을 받은 것”이라며 양형이 부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미결 구금이 감형 사유인 만큼 집행유예 등이 나올 수 있는 셈이다.


sp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