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사각지대…여성에 의한 남성 성희롱

피해사례 여자상사, 남자직원 사무실로 불러내 엉덩이 등 신체부위 더듬고 비비고…

대처법은 경찰도 ‘대부분 여성이 피해자’ 선입견 남성, 피해당했을땐 녹취 등 적극 대응을

컴퓨터 개발회사에 근무하는 톰 샌더스(마이클 더글러스). 자신의 부서가 다른 회사에 인수돼 독립되면서 부사장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정작 인수 작업에 관여했던 옛 연인인 메리더스 존슨(데미 무어)가 부사장으로 부임한다. 두 사람은 10여년 전 동거까지 했던 사이. 메리더스는 신개발품에 문제가 있어 논의가 필요하다며 늦은 저녁에 톰을 부른다. 톰은 메리더스의 사무실로 가지만, 그녀는 일보다 옛 연인과의 육체적 ‘밀착’에 더 신경썼다. 이 같은 유혹을 뿌리치고 뛰쳐나온 톰에게 수치심을 느낀 메리더스는 톰이 자신을 성희롱했다는 누명을 씌워 회사에서 내쫓으려 한다.

1995년 국내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폭로(Disclosure)’의 줄거리 중 일부다. 보통 성희롱하면 사내에서 남자 상사와 여자 부하직원 간의 일을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깼다. 성희롱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性)이 여성과 남성으로, 서로 뒤바뀌었기 때문이었다.

‘폭로’는 여자에게 우위의 지위가 주어진다면 남성에 대한 성희롱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자가 상사고, 남자가 부하 직원이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 영화는 성희롱이 성(性)이 아닌 파워(power)가 좌우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Sexual harassment is not about sex. It’s about power(성희롱은 남녀의 성 문제가 아니다. ‘파워’에 관한 문제다).” 이 영화 속 대사가 이를 함축해준다.

이제 이 같은 여성의 남성 성희롱은 더 이상 영화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 사례에서 남자가 성희롱의 가해자인데다, 부족한 사회 인식으로 관련 자료조차 구축되지 않아 성희롱 사건의 새로운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부부관계에서 성적 수치심 느끼는 남편도=남성 성희롱에 대한 상담을 받는 한국 남성의 전화(www.manhotline.or.kr)에 따르면 남성 성희롱에 대한 사례는 다양했다. 같은 직장이나 거래처 간은 물론 심지어 부부 사이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상담 내용을 보면 ‘폭로’처럼 여자 상사의 거듭된 요구와 강압을 못 이기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이 같은 여성 상사는 대부분 명령선상에 있어 옳지 못한 요구라도 들어줘야 하는 때가 많다.

일례로 한 30대 초반 미혼 남성은 같은 직장 상사인 40대 기혼 여성의 수차례 성관계 요구를 이기지 못 하고 술자리 끝에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다음날 상사는 태도를 바꿨다. 회사에 소문이 날 것을 우려, 남성에게 직장을 그만두라고 압박까지 하며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였다.

[위크엔드] 남자 부하직원에 잠자리 거절당하자…女상사, 되레 “당했다” 보복

여성들이 남성 앞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음담패설을 일부러 늘어놓기도 했다. 남성이 한 명밖에 없는 모 유통업체 한 부서의 경우 팀장을 비롯한 모든 선배 사원들이 남편이나 남자친구와 잠자리 이야기 등 시시콜콜하고 노골적인 이야기를 20대 신입 남자 사원 앞에서 늘어놓았다. 수치심을 느낀 이 사원은 어렵게 얻은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지 고민하는 상황이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하지도 않았는데 “당했다”며 무고를 거는 경우도 많았다. 이 사례는 같은 회사뿐 아니라 거래처는 물론 업주와 아르바이트 학생 사이에도 벌어졌다.

20대 중반 여성 사원은 입사하자마자 같은 부서 20대 후반 남성 사원에게 첫눈에 반했다. “좋아한다”며 미친듯이 남성을 쫓아다녔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결국 여성은 따로 술자리를 가진 뒤 남성이 자신을 성추행했다며 회사에 소문을 내기까지 했다.

이 같은 무고는 돈과 연결되는 것이 특징이다. 회사 회식 자리 뒤 합의하에 잠자리를 가진 남성이나, 임금을 올려받기 위해 털 끝 하나 건드리지 않은 업주를 성폭행으로 신고해 합의금을 챙겼다. 심지어는 화대(花代)를 받는 ‘노래방 도우미’가 돈이 부족하다며 성추행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노골적으로 신체접촉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여성 상사는 일부러 마음에 드는 남성 사원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엉덩이 등 신체 특정 부위를 만졌다.

보험사 등에 근무하는 남성 영업사원도 성희롱 사각지대에 있었다. 여성 고객들이 계약 연장을 빌미로 특정 부위를 때린다든가, 놀러가거나 노래방이나 술집으로 가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 영업사원은 자신이 ‘을’이므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극히 드문 사례지만 수시로 부부관계를 요구하거나 심지어는 강제로 관계를 맺는 바람에 수치심을 느낀 남편도 있었다.

▶“내세울 증거 많지 않아…녹취가 필수”=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남성 성희롱에 대한 인식은 극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남성의 전화에 따르면 남성이 성추행을 당했음에도 여성의 신고만 믿고 구속하거나 체포해 만만찮은 합의금을 물어줘야 될 때가 많다.

이옥이 남성의 전화 소장은 “성희롱 사건에 있어 여성과 달리 남성은 ‘안 그랬다’는 명확한 증거를 찾기 어렵다”며 “경찰도 대부분 ‘여성이 피해자’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어 조사과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결국 남성 성희롱 사건에 있어서는 남성이 약자인 셈이다.

그러면 이 같은 성희롱 사건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직장에서의 사건일 경우 여성은 무고로 남성을 가해자로 몰지만 이럴 때일수록 숨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이 소장은 충고했다. 대부분 남성은 사회적 선입견 때문에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숨어있을 때가 많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면 끝까지 대응할 것도 이 소장은 주문했다. 그는 “대부분 남성이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데다, 구속과 재판에 지치다보면 합의를 생각하기 마련”이라면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상황을 판단해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증거가 있어야 경찰 조사는 물론 법정에서도 유리하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녹취다. ‘폭로’에서도 부사장이 남성을 덮치려고 할 때 마침 남성의 휴대폰으로 친구의 전화가 걸려오고 친구의 자동응답기에 남성이 관계를 거부하는 “No, No”라는 음성이 녹음돼 증거로 활용된다.

이 소장은 “성희롱 사건을 당할 경우 우선 목격자를 찾으면 좋지만 여자들의 특성상 두 사람만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라며 “보통 상대방 여성이 나에 대해 성희롱 의도를 보이는 경우는 물론 일부 여성이 ‘성희롱을 당했다’며 무고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아 녹음은 필수”라고 말했다.

신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