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소개소의 남자는 “나랑 한 번 자면 일을 주겠다”는 태도다. 여성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에는 “한 번에 얼마”식의 음란한 낙서가 곳곳에 있다. 성 보조기구가 사물함에 놓여 있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몰래 여성동료를 불러내 “여기는 아무도 도움 청할 사람이 없는 곳”이라며 약점을 잡아 몸을 밀착해올 때도 있다. 이에 분노한 주인공이 노조대표로 직장 내 성차별과 성폭력을 개선하기 위해 나서자, 회사와 온 동네엔 그녀를 “창녀, 헤픈 여자”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셜라이즈 테론이 주연을 맡은 영화 ‘노스 컨추리’에서 광산의 여성 노동자들이 당면한 현실이다. 이 작품은 미국 최초로 여성 성희롱 피해자로 집단소송을 해 승소한 조시 에임스의 외로운 법정 투쟁을 그렸다.
한국은 어떨까? 전도유망한 여성 디자이너 희주(김현주 분)는 직장 상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끈적거리는 농담과 불쾌한 신체접촉 등 성희롱을 오랫동안 견뎌왔지만, 결국은 돌아온 것은 성폭행이었다. 희주는 그를 고소하지만, 상대는 희주의 개인신용정보와 직장 CCTV를 증거로 제출하며 “여성이 경제ㆍ업무의 이익을 위해 먼저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고 주장한다. “여자가 먼저 꼬리쳤다”는 반박이다. 인권과 차별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 영화 ‘시선너머’ 중 ‘백문백답’ 편이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성범죄인 성희롱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성희롱은 업무, 고용 기타관계에서 그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어나 행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등을 조건으로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다. 보통 남성 상사와 여성 부하 직원 사이에서 일어나며, 직장 내에서 공개되거나 법적 분쟁 시 가해자는 보통 ‘여성이 먼저 유혹했다’는 식으로 발뺌한다.
반면 여성 상사가 남성인 부하직원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영화에서 다뤄졌다. 성희롱 영화의 고전격인 마이클 더글러스와 데미 무어 주연의 영화 ‘폭로’다. 옛 연인이었던 여성이 먼저 승진해 상사로 부임하고, 그는 부하직원인 과거의 남자친구를 유혹하다 실패한다. 굴욕을 당한 여성 상사는 오히려 남자가 먼저 성희롱했다며 해고하려들고, 주인공이 법정 투쟁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정치계의 ‘섹스스캔들’을 다룬 최근작 영화로는 조지 클루니 감독ㆍ주연의 영화 ‘킹 메이커’가 있다. 대선 가도에서 승승장구하던 민주당 후보와 그의 보좌관이자 선거본부 홍보책임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캠프의 한 인턴 여성이 두 남자와 관계를 맺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정치와 미디어, 섹스스캔들의 함수를 보여주는 작품이자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을 연상케 하는 영화. 홍보책임자와 인턴 여성이 관계됐다는 점에서 국내 관객에겐 ‘윤창중 스캔들’과 겹치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