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0월드컵 이광종호, 승부차기 혈투 끝 콜롬비아 꺾고 8강행

스타는 없지만 조직력 끈끈 끈질진 압박·협력 수비로 결실 8일 30년만에 ‘4강신화’ 정조준

기성용·윤석영 등 SNS글 파문 A대표팀 불화설과 큰 대조

형님은 입으로 사고칠때, 동생들은 8강 사고쳤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선수들이 마음을 합해 더 큰 팀을 만들도록 하겠다.”

4일(한국시간) 20세 이하(U-20) 한국 축구 대표팀이 4년 만에 2013 월드컵 8강 진출의 쾌거를 달성한 뒤 이광종 감독이 밝힌 짧은 소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 한마디에서 축구팬들은 스타플레이어 한 명 없이 월드컵 8강을 이룩한 U-20 대표팀의 눈부신 투혼과,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막판 불화설에 시달리다 급기야 폭발해버린 성인 대표팀의 일그러진 영웅심을 다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은 이날 터키 트라브존의 후세인 아브니 아케르 스타디움에서 열린 강호 콜롬비아와 16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서 8-7로 이겼다.

한국은 2009년 이집트대회 이후 4년 만에 8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1983년 멕시코 4강 신화 재현에 한발 더 다가섰다. 한국은 8일 0시 카이세리에서 이라크와 8강전을 치른다. 조 3위 와일드카드로 힘겹게 16강에 오른 한국에게 콜롬비아는 객관적으로 벅찬 상대였다. 하지만 이광종호는 콜롬비아의 뛰어난 개인기에 빠른 역습과 압박, 끈질긴 협력수비로 맞섰다. 홍명보 A대표팀 감독이 말한 ‘한국형 축구’의 힌트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정신력과 체력, 스피드와 압박으로 무장한 경기였다.

전반 16분 송주훈(건국대)이 선제골을 넣으며 기선을 제압한 한국은 콜롬비아의 파상공세에 조직적인 압박으로 콜롬비아의 주공격수 퀸테로와 존 코르도바를 막아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지만 고비마다 날카로운 역습을 펼치며 콜롬비아 수비수들이 마음놓고 공격에 가담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후반 추가시간, 마지막 1분을 버티지 못했다. 아크 오른쪽에서 프리킥을 내줬고 퀸테로가 이를 동점골로 만들었다. 연장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 한국은 9번째 키커까지 가는 피말리는 승부차기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20세 이하 동생들이 투혼을 발휘하는 동안 형들은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대표팀 불화설을 스스로 인정해 버렸다. 최강희 전 대표팀 감독이 기성용(스완지시티)의 SNS 발언을 두고 “할 말이 있으면 감독에게 직접 말해야지 (SNS에서) 그러는 건 비겁하다”고 하자 쌓였던 감정들이 분출했다. 기성용은 자신이 명단에서 제외된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3연전 기간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들면 리더 자격이 없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최 감독을 겨냥한 글이라는 논란이 일자 기성용은 교회 설교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날 최 감독의 인터뷰 내용이 보도되자 기성용은 활발하게 활동하던 트위터 계정을 폐쇄했다.

윤석영(QPR)도 기름을 부었다. 최강희 감독이 혈액형으로 수비수를 대충 판단할 수 있다고 농담조로 말한 데 발끈했다. 윤석영도 트위터에 “2002 월드컵 4강-이영표 김태영 최진철 송종국. 2012 올림픽 동메달-윤석영 김영권 김창수 그리고 아쉽게 빠진 홍정호. 이상 모두 O형. 그 외 최고의 수비력 박지성 O형”이라는 글을 남겼다. 최 감독의 말을 공개적으로 반박한 것이다. 몇몇 선수들이 SNS를 통해 갈등을 드러내자 황선홍 포항 감독은 “선수는 운동장에서 실력으로 평가받으면 된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게 무슨 도움이 되나. 자기 얼굴에 침 뱉기다”고 일갈했다.

이날 20세 이하 아우들은 SNS에서 가시돋힌 말로 떠들어대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실력’으로 우승후보를 꺾었고, 30년 만의 4강 신화 재현에 성큼 다가섰다. 축구선수로서의 기본이 뭔지, 형들에게 조용히 한 수 가르친 아우들의 ‘하극상’이었다.

조범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