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지난 12월 23일 방송된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에서 게스트로 출연했던 배우 박철민은 “김난도 교수가 쓴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쓰레기다”라고 말했다. “아파하고 힘든 청춘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DJ의 말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이 발언은 아파도 참고 견디는 게 당연했던 많은 청춘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장면 둘. 한달 뒤 이 배우는 종합편성채널 JTBC의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이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특정 대상을 향한 비난이 사회적으로 크게 회자되자 부담이 컸던 모양이었다. 온라인 상에서는 그의 사과를 두고 찬반 논란이 일기도 했다. “표현이 과격했다”라는 쪽과 “맞는 말 했는데 무슨 사과냐”라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최근 패션업계에서는 오래도록 ‘아프니까 청춘’을 강요한 일이 수면 위로 부각돼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다. 지난해 10월 무렵 디자이너 이상봉(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회장)이 그의 디자이너실 견습생들에게 월 10만원, 인턴에게는 30만원, 정직원에게는 110만원의 급여를 준다는 이야기가 온라인상에 급속하게 퍼지면서부터다. 이른바 ‘열정 페이(Pay)’ 논란이다. 패션 디자이너의 꿈과 열정을 가진 지망생들에게 저임금, 무급인턴을 강요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청년유니온(위원장 김민수), 패션노조(대표 배트맨D), 알바노조(위원장 구교현) 3개 청년단체는 그를 ‘2014년 청년착취대상’ 수상자로 선정하고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상봉 외에도 최범석, 이승희, 이석태, 고태용 등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을 청년착취 대상으로 거명했다. 이렇듯 사태가 악화되자 두 달 가까이 침묵했던 이상봉 디자이너실은 결국 공식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청년단체들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진심어린 사과를 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면서 임금 인상과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대화의 자리를 조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사태는 일단 진정 국면이다. 이상봉 디자이너에게도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패션업계 관행을 따랐을 뿐인데 좌장 격이라는 이유로 비난 여론이 그에게로만 쏠렸다. 게다가 상황도 좋지 않았다. ‘땅콩 회항’ 논란, ‘위메프 채용’ 논란 등으로 ‘갑의 횡포’가 사회적인 이슈가 된 데다가 드라마 ‘미생’ 이후 청년인턴 문제가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착취의 원흉으로 ‘총알받이’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어찌 됐든, 그는 한국 패션업계를 이끄는 어른이고,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청춘들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다. 그러기에 업계 관행을 깨고 청춘의 열정에 제값을 쳐주는 일을 그가 먼저 나서서 해야만 한다.
2015년 현재 한국의 최저 시급은 5580원. 담배 한 갑 사고 나면 편의점 삼각김밥도 여의치 않은 돈이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는 이상봉 디자이너실 견습생의 시급은 약 300원. 열정 을 착취당한 채 아픔이 당연한 것처럼 강요받는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들, 이 시대 청춘들이 비싸진 담배 한 모금의 ‘위안’은 고사하고 삼각김밥 점심 한 끼 정도는 편히 먹어야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