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공식 산출 첫 3거래일 간 外人 9151억·기관 8262억 밸류업株 순매도
밸류업 지수 첫 주 -3.4%…시총 상위 7개株 주가 하락세 큰 영향
밸류업 지수 시총 TOP10에 外人·기관 순매도세 집중
“밸류업 호재 선반영 탓 추가 상승 불투명”…관련 선물·ETF發 호재 ‘갸우뚱’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란 야심찬 목표를 두고 한국거래소가 공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이하 밸류업 지수)’에 대해 국내 증시에서 ‘큰손’으로 통하는 외국인·기관 투자자의 평가는 냉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밸류업 지수 가동 첫 1주일 간 구성 종목 100개주(株)에 대해 1조7000억원이 넘게 순매도세를 보이면서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밸류업 지수가 공식적으로 산출되기 시작한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4일 종가까지 3거래일 간 외국인 투자자는 밸류업 지수를 구성하는 100개 종목에 대해 총 9151억원 규모의 순매도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기관 투자자의 순매도액도 8262억원에 달했다. 불과 3일 만에 외국인·기관 투자자가 내다 판 밸류업 지수 편입 종목 규모는 총 1조7413억원에 달한다. 반대로 개인 투자자는 같은 기간 밸류업 지수 종목 주식 총 1조6012억원 어치를 사들였다.
외국인-기관 투자자는 대규모 수급을 담당하며 국내 증시 주요 지수와 주요 종목의 향방을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밸류업 지수가 공식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첫인상에선 외국인·기관 등에겐 투자 유인으로 작용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서 “밸류업 지수가 ‘큰손’에겐 국내 증시 투자에 나설 매력도를 높이기엔 역부족”이라고 꼬집었다.
외국인·기관 투자자들의 종목별 순매도액에서 눈 여겨 볼 지점은 밸류업 지수 내 시총 상위 종목들에 대한 순매도세가 강했다는 점이다.
기관 투자자의 경우 밸류업 지수 내 시총 톱(TOP)10 중 순매도세를 기록한 종목은 1위 삼성전자(순매도액 3673억원), 2위 SK하이닉스(1052억원), 3위 현대차(233억원), 4위 셀트리온(234억원), 5위 기아(331억원), 6위 신한지주(206억원), 8위 고려아연(1242억원), 9위 삼성화재(77억원), 10위 한화에어로스페이스(285억원) 등 9개 종목에 달했다. 순매수세를 보인 종목은 7위 메리츠금융지주(25억원)가 유일했다.
외국인 투자자도 시총 톱10 종목 중 6개 종목이나 순매도세였다. 특히, 시총 1위 삼성전자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는 3거래일 만에 1조1232억원어치나 팔아치웠고, 2위 SK하이닉스(순매도액 11억원), 3위 현대차(478억원), 5위 기아(631억원), 7위 메리츠금융지주(12억원), 9위 삼성화재(111억원) 등에 대해서도 순매도세를 기록했다.
밸류업 지수 전체 100개 종목으로 범위를 넓히면 외국인·기관 투자자 모두 순매수·순매도세를 기록한 종목수는 각각 49개 대 51개, 54개 대 46개로 엇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시총 상위 종목들을 중심으로 뚜렷했던 외국인·기관 투자자의 순매도세에 해당 주가도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밸류업 지수를 전체적으로 끌어내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밸류업 지수의 첫 주 등락률은 -3.4%(1020.73→985.99포인트)에 그쳤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5.61%), SK하이닉스(-5.28%), 현대차(-5.89%), 셀트리온(-1.08%), 기아(-6.49%), 신한지주(-2.31%), 메리츠금융지주(-0.51%) 등 시총 상위 7개 종목 전체 주가가 하락한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아직 밸류업 공시가 활발하지 않은 기업도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만큼 지수 운용 초기엔 종목 선정 조건 중 하나였던 ‘시장대표성(시총)’의 영향이 클 것”이라며 “코스피200 등 기존 시장 대표 지수와 차별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투심을 사로잡는 데 제약 조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고 짚었다. 실제로 9월 30일~10월 4일 코스피200 지수 등락률은 -3.44%로 밸류업 지수의 흐름과 거의 동일했다. 이어 “3분기 실적 시즌을 앞두고 지정학적 리스크와 환율 등 대내외적인 불확실성 탓에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기존 예상치 대비 영업이익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는 점은 분명 주가엔 부정적”이라고 짚었다.
증권업계에선 지수 편입 기대감이 높았던 종목들에 대한 투심이 선반영됐다는 점도 거래소가 기대한 밸류업발(發) 추가 상승 동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조재운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형주를 중심으로 그동안 발굴되지 못했던 종목들이 밸류업 지수에 추가될 경우 (개별 종목별로는)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지만, 시총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증시 전체 부양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신희철 iM증권 연구원도 “결과적으로 밸류업 지수는 코스피200 대시 배당수익률이 저조하고, 배당 성향은 코스피200을 소폭 상회하는 수준으로 주요 주주환원 지표가 아쉬운 수준”이라며 “특히, 개별 기업들로 봤을 때 주주 환원이나 수익성과 거리가 먼 종목들이 다수 포진했다”고 지적했다.
거래소가 밸류업 지수를 기반으로 한 지수 선물과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예고한 가운데, 이들 상품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에 대해서도 우려 섞인 시선이 금융투자업계에선 이어진다. 앞서 지난달 24일 밸류업 지수를 직접 발표한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은 “오는 11~12월이 되면 (밸류업 지수를 추종하는) 지수 선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나오는데, 연기금뿐만 아니라 해외투자자들도 많이 투자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국내 A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 상당수가 밸류업 지수를 추종하는 ETF 개발에 나선 것은 사실이지만, ‘액티브’냐 ‘패시브’냐 차이 외엔 운용사 간 상품 특색이 다양할 수 없는 구조”라며 “중장기 투자 성향을 보이며 안정적인 수급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외국인·기관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로 밸류업 ETF를 만들 수 있을 지가 고민 지점”이라고 말했다.
밸류업 지수 발표와 동시에 일부 종목의 편입·편출이 시장 예상 기준에서 어긋났다는 의혹과 불만에 휩싸이자, 거래소가 이틀 만에 ‘조기 종목 변경’ 카드까지 꺼내든 것에 대해서도 걱정어린 평가가 나온다. 시장 참가자들의 비판에 신속하게 변화하려는 모습에 점수를 줘야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매년 6월 한 차례 리밸런싱(구성종목 변경)’이란 원칙이 흔들렸다는 점에서 지수 신뢰도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점 때문이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큰 변동성으로 인해 밸류업 지수에 대한 신뢰성에 금이 가는 것도 문제지만, 기존 대표 지수와 차별성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면서 “관련 ETF가 출시해도 현재 구성 종목과 선정 기준과 실제 적용 사례 등에 대한 의문이 계속 이어지는 만큼 외국계 자금으로선 적극 투자에 나서기엔 리스크가 크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밸류업 지수가 이제 막 첫발을 딛었다는 점에선 중장기적 시각으로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증권가에선 나온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프로그램은 주주환원을 통한 주가 상승에서 더 나아가 민간 발 구조조정, 유휴자산 효율화로 발전해야 한다”며 “이번 밸류업 지수 발표는 장기 정책 프로그램 초입 이벤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