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한 달 만에 다시 찾아온 미국발(發) ‘R(Recession, 침체)의 공포’로 국내 증시가 급락세를 보인 가운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쉽사리 가시기 힘든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美 경기 정체·둔화 지역, 7월 보다 3곳 증가”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4일(현지시간) 발표한 경기 동향 보고서 ‘베이지북’을 통해 미국 내 경제 활동이 정체되거나 둔화한 지역이 총 12개 관할 지역 중 9개 지역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7월 공개된 베이지북의 5개 지역보다 4개 더 증가한 것이다.
나머지 3개 지역에선 성장세가 ‘소폭(slight)’ 확인된 것으로 연준은 평가했다.
연준은 “고용주들이 수요에 대한 우려와 불확실한 경제 전망을 이유로 고용에 더 신중했고 인력을 확대할 가능성을 낮게 봤다”고 전했다.
이번 베이지북을 근거로 오는 17~18일(현지시간) 개최하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선 피벗(pivot, 금리 인하)이 시작될 것이란 전문가들의 전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시카고파생상품거래소그룹(CME Group)의 페드워치 툴에 따르면 이날 뉴욕증시 마감 무렵 연준이 오는 9월에 금리를 50bp 인하할 확률은 45%로 반영됐다. 전일 38%에 비해 ‘빅 컷’ 가능성이 더 커진 셈이다.
문제는 그만큼 미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라는 점이다.
전날 미국의 제조업 관련 지표가 실망감을 안긴 데 이어 고용시장에서도 부진한 양상이 나타나면서 시장의 긴장감은 커지고 있다.
이날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7월 구인·이직 보고서(JOLTS)에 따르면 계절조정 기준 구인(job openings) 건수는 767만3000건으로, 전월치인 791만건보다 23만7000건 줄어들었다. 이는 2021년 1월 이후 최저치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인 700만건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복귀한 것이다. 반면 7월 해고는 전월 156만건에서 176만2000건으로 늘어났다.
이날 발표된 구인·이직 보고서는 기업들의 구인은 줄어드는 동시에 해고는 늘어나는 양상이 펼쳐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美 증시 이달 최대 10% 하락 가능”
앞서 전날 미 뉴욕증시(NYSE) 3대 지수는 지난 8월 5일 글로벌 증시 투매 사태 이후 최악의 폭락세를 보인 바 있다.
4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 대비 38.04포인트(0.09%) 상승한 40,974.97에 거래를 마쳤다. 대형주 벤치마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장보다 8.86포인트(0.16%) 내린 5,520.07,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52.00포인트(0.30%) 하락한 17,084.30에 마감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번 주 후반 발표가 이어지는 고용 관련 지표들에 주목하고 있다. 나머지 결과에 따라 금리 전망을 하려는 신중한 심리가 감지된다.
익일은 미국의 ADP 민간 고용 보고서와 주간 실업보험 청구자 수가 발표된다. 오는 6일에는 시장의 관심이 가장 큰 미국의 8월 고용보고서가 발표된다.
트루이스트의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 키스 러너는 “투자자들은 불안해하고 있으며, 확신이 없는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며 “모두가 이번 주 금요일에 발표되는 고용보고서를 대기하고 있으며, 그때까지는 (주가가) 버티는 패턴이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전통적으로 증시가 약세를 보여온 9월을 맞아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채 변동성 확대에 대비하고 있다.
월가 분석가들은 강세론자·약세론자 막론하고 이번 달 미국 증시가 최대 10%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강세론자들은 약세장을 매수 기회로 제안했다.
메릴 앤드 뱅크오브아메리카 프라이빗뱅크의 투자 책임자 크리스 하이지는 “향후 8주간은 포트폴리오를 재조정·다각화하고, 실제 시장이 투자자 개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랙 먼데이’ 수준까지 떨어진 韓 증시…“당분간 탐색”
전날 미국발 ‘R의 공포’로 최근 1개월 간 보였던 반등세가 무너졌던 코스피, 코스닥 지수의 향방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지난달 초 폭락 이후 회복세가 둔화하면서 횡보하던 증시가 한 달 만에 또다시 큰 폭으로 내리면서 본격적인 약세장에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면서다.
외국인 매도세 속에 반도체주가 주도력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증시의 부진은 향후 수개월간 계속될 수도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전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83.83포인트(3.15%) 내린 2,580.80으로 마감했다.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3.45%, 8.02% 하락하면서 전체 지수를 끌어내렸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9860억원, 7307억원을 순매도했다.
‘블랙먼데이’로 기록된 지난달 5일 코스피가 8.77% 폭락한 이후 반등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한달 만에 다시 급락하자, 증시가 추세적인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비우호적인 대외 환경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추정치를 기존 3.2%에서 3.1%로 낮췄고, 중국 추정치도 5.0%에서 4.8%로 하향 조정했다.
여기에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지난달 폭락장의 배경 중 하나였던 엔화 절상 리스크도 다시금 커지고 있다.
이처럼 변동성이 커진 액티브 장세에서 중소형주가 방어선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마저 국내 내수 부진을 고려하면 기대하기 힘들다는 평가다.
강대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의 단기 방향성 탐색 구간이 좀 더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변동성 레벨도 재차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최근 내수 지표를 볼 때 중소형주에 대한 투자의견을 상향하기에도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전통적으로 약세였던 8, 9월의 계절적 영향과 중기적으로는 11월 미국 대선의 영향으로 이처럼 불안한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이날 국내 증시는 전날 낙폭을 의식한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반등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오는 6일 미국 8월 고용보고서 공개를 앞둔 경계감에 상단은 제한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전날 과대 낙폭에 따른 기술적 반등을 기대한다”며 “그러나 금요일 고용지표 발표와 외국인 수급 부재 영향으로 반등 폭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기하고 있는 이벤트를 점검하면 향후 주가의 변동성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6일 발표되는 8월 고용지표 중 실업률이 컨센서스(4.2%)를 상회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