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매출 1억” 주장 유튜버 ‘구제역’에 벌금형…타격 없어
‘명예훼손’·‘모욕’·‘협박’ 혐의 유튜버들 형량 대체로 어땠나
법조계 “권력화 되고 있는 유튜버들 제어할 방안 마련돼야”
[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최근 유튜브 플랫폼 등에서 허위·비방 콘텐츠를 생산하며 높은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이른바 ‘사이버레커(Cyber-wrecker)’들의 불법적 행태가 ‘쯔양 협박 사태’를 계기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협박을 통해 금전을 요구하는 등 심각한 범죄로까지 나아갔다. 하지만 법원에선 대체로 벌금형과 같은 낮은 형량이 선고되고 있어 사이버 레커들의 ‘창궐’을 사실상 방치하는 꼴이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법조계에선 양형을 강화하거나 실효적인 민사적 제재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 매출 1억” 주장 유튜버 ‘구제역’에 벌금형…타격 있을까
유튜버 쯔양을 협박하고 돈을 뜯어낸 혐의를 받는 유튜버 구제역(본명 이준희)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다른 사람에 대한 협박,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원지법에서만 8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씨는 명예훼손 및 협박 혐의로 수원지법에서 1,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수원지법 형사13단독 김달하 판사는 지난 5월 협박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약식명령액과 같은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씨는 벌금형 약식명령이 내려진 또 다른 명예훼손 혐의 사건에 대해서도 정식재판을 청구해 다음달 재판이 예정돼 있다. 이 밖에도 이씨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 등 총 6개 사건이 병합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씨는 현재 쯔양을 협박해 5500만원 규모 계약을 체결한 혐의를 비롯 총 7건의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한 달 매출이 1억인데, 몇천만원 받겠다고 그랬겠느냐”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껏 여러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아왔음에도 벌금형과 같은 낮은 형량이 이씨에게 유사 범죄를 지속하게 한 빌미를 제공했던 게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이씨는 지난 18일 이번 사건과 관련해 녹음파일을 조작한 혐의 등으로 유튜버 카라큘라와 함께 고발되기도 했다.
‘명예훼손’·‘모욕’·‘협박’ 혐의 유튜버들 형량 대체로 어땠나
유튜브 조회수를 위해 타인을 조롱하는 사이버 레커들의 행태에 전 국민적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구독자 120만명의 유튜버 뻑가는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 잼미의 죽음에 간접적 책임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잼미에 대해 ‘남성을 혐오하는 페미니스트’라고 조롱하는 등 지속적으로 비방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7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그의 채널 삭제와 수익정지 및 수익환수를 촉구하는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19일 헤럴드경제가 이와 유사한 명예훼손, 모욕, 협박 등 혐의로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유튜버들에 대한 최근 1년간 판결 일부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실제 해당 혐의로 기소된 유튜버들 상당수는 벌금형과 같은 낮은 형량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선 모욕,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유튜버 박모 씨에게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박씨는 2022년 4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 방송을 하며 교제폭력으로 헤어진 연인의 연락처를 공개하고 욕설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해당 방송에서 헤어진 연인이 과거 직장 동료에게 성희롱 누명을 씌웠다는 등의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도 있다.
부산지법에선 지난 2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모욕 등 혐의로 기소된 유튜버 A씨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2021년 12월~2022년 6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게시판과 영상에 피해자 B씨에 관한 학교폭력, 중퇴, 와이프 폭행 등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A씨의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8월에는 유튜버 C씨가 자신의 유튜브 생방송에서 뇌병변 장애인 유튜버 D씨를 “아주 개념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으나, 창원지법은 C씨에게 벌금 250만원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다만 협박 혐의로 기소된 유튜버들의 경우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되기도 했다.
법조계 “권력화 되고 있는 유튜버들 제어할 방안 마련돼야”
이처럼 명예훼손 등 혐의를 받는 사이버 레커들의 형량이 낮은 이유에 대해 법조계에선 표현의 자유를 크게 제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한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상 생활에서 타인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명예훼손과 모욕의 요소가 포함돼 있는데, 초범에 대한 엄중 처벌은 자칫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는 민사적으로만 제재하고, 형사적으로 처벌해선 안 된다는 이른바 ‘비범죄화 논의’도 이뤄지고 있는 만큼 대부분 벌금형이 선고되는 추세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지방에 있는 한 고법판사는 “반복적으로 명예훼손 등이 이뤄져 상당한 피해가 있다거나 관련 처벌을 받았음에도 동일 행위를 반복하고, 실제 타인에 대한 위해 가능성까지 있다면 명예훼손이나 모욕 혐의만으로도 실형이나 집행유예를 고려할 수 있겠지만 실제 실형으로 나아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협박의 경우는 위해가능성이나 반복성이 있어 초범이라도 실형이 선고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타인을 자극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사정이 드러난다면 초범이라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고려할 사정이 될 것 같지만, 통상 그런 사정은 약식명령으로 진행되는 사건에서 제대로 현출되기 어렵다”며 “범죄로 큰 수익을 남기는 자들이 갖고 있는 효과적 수단(형사합의 포함)들은 현재 판사나 검사에게 부여된 권한을 쉽게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이버 레커들의 불법적 행태를 제어하기 위해선 가짜뉴스 유포 등에 조 단위의 손해배상 판결을 하는 미국처럼 민사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다만 수사기관의 강도 높은 수사와 강력한 양형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가 다수였다.
지방법원에 있는 또 다른 판사는 “전파성을 바탕으로 수익을 취하는 방식의 미디어 생산은 부작용도 크고, 종전의 일대일 범행과 양상도 많이 달라 양형을 엄하게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형로펌 파트너변호사는 “구제역과 같은 사이버 레커들은 그 폐해가 너무나 크고, 자칫 사적구제 내지 과도한 자력구제, 유사 협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사이버 레커들이 유튜브로 버는 수익을 감안할 때 벌금 몇백 수준의 양형은 아무런 제재 기능을 하기 어려워 일반적인 경우에 비해 더 높은 형량을 선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