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끝까지 강행 처리vs거부권 정국

전력망법·고준위법 등 모두 폐기 수순

AI 기본법·K칩스법 등 경제 관련 법안

‘육아휴직 3년법’ 등 민생법안도 무산

막판까지 ‘극한 대립’…21대 국회, 민생-경제법안 소득 없이 끝났다 [이런정치]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해 악수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박상현·김진 기자] 22대 국회가 30일 개원함에 따라,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민생·경제 법안들이 줄줄이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여야가 21대 국회 마지막까지 극한 대립을 이어가면서, 민생과 경제를 살릴 법안들의 처리는 무위에 그치게 됐다. 지난해 4월 처음 시작된 ‘거부권 정국’은 1년을 지난 21대 국회 마지막까지 이어지게 됐고, 여야는 연금개혁을 두고도 설전을 벌이며 정쟁을 계속하고 있다.

28일 국회 본회의에는 ‘고(故)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상병 특검법)’ 재표결과 ‘전세사기특별법’ 2건이 오르는 것으로 예정됐다. 이날 본회의는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로, 이날 처리되지 못하고 계류 중인 법안들은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된다.

이에 따라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민생·경제 법안들 역시 임기 만료로 결국 폐기된다. 정부가 622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전력망 구축을 위한 특별법이 대표적으로, 여야는 법안 필요성에 공감하며 입장차를 좁혔지만 총선 이후 정쟁이 더욱 거세지면서 21대 국회 통과는 요원해졌다. 주요 관련법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여당 간사인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을 포함한 4건으로, 장거리 송전망 신설을 포함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수도권 산업을 타깃으로 한 대규모 전력공급 대책 마련이 핵심이다.

산자위 최대 쟁점 법안인 ‘고준위 방사성 관리 특별법(고준위 특별법)’ 또한 마찬가지다. 정부·여당이 핵심 민생 법안으로 꼽는 원전 폐기물 처분 부지 확보를 위한 해당 법안에 대해, 여야는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접점을 찾았지만 마지막 본회의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도 오르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됐다.

국민의힘 산자위 관계자는 “민주당 쪽에 내부 정리가 되면 연락을 달라고 했지만 (민주당) 강성파들 사이에서 내부 정리가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전력망법도 이견이 없고, 고준위법도 이견 없이 내부적으로 거의 합의가 다 된 상황인데 강성파 때문에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기술 유출 방지와 보호를 위한 처벌 강화 취지에 여야가 공감대를 이룬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과, 식품산업과 첨단·혁신기술 융복합 기반 마련 및 푸드테크산업 육성을 골자로 한 ‘푸드테크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안’도 폐기된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KDB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 내용을 담은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과 여당 공약 사항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위한 ‘AI 기본법’과 반도체 등 투자 세액 공제를 2030년까지 연장하는 ‘K칩스법’ 등도 좌초 위기다. 특히, K칩스법은 올해 말이 일몰 기한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대형 마트 휴무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바꾸는 유통산업발전법 ▷부양의무를 다 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일명 구하라법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해 법관을 증원하는 판사정원법 ▷저출생 극복을 위해 육아휴직 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등도 무산될 위기다.

여야는 4·10 총선 이후 열린 지난 2일 본회의를 비롯해 이날까지 정쟁을 이어오며 민생·경제 법안 처리를 뒷전으로 미뤘다. 총선 이후 여야가 협치를 통해 지난 2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법안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뿐으로, 민생 관련 법안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을 주도적으로 강행처리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에 지난 21일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맞섰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양곡관리법에 처음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며 시작된 ‘거부권 정국’은 결국 1년이 지난 21대 국회 마지막까지 이어지게 됐다.

윤 대통령은 ▷간호법 제정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란봉투법)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3법)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대장동 50억클럽 의혹 특검법(쌍특검법)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2024년 1월) 등 야당이 주도해 강행 처리된 법안들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고 그때마다 정국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통과시키지 못한 법안들을 22대 국회 개원 후 패키지로 재입법한다는 계획이다.

여야는 이 밖에도 21대 국회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금개혁’을 두고도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여당의 타협안인 소득대체율 44%까지 수용하겠다는 전향적 입장을 밝히면서 이번 국회 내 연금개혁안 처리를 연일 압박 중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소득대체율 44%안 역시 구조개혁이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