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 특허출원, 中에 6분의 1 불과
조선업 구조조정에 연구인력 감소 영향
“실패한 일본 조선 전철 밟을 수도” 지적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중국이 연구개발(R&D) 지출을 늘리며 조선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가운데 조선분야 특허 출원이 우리나라의 6배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반면, 우리나라의 조선분야 특허 출원은 최근 10년새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상태다. 특허 출원 증가는 조선산업 경쟁력과 수주역량 증대로 이어지는 만큼, 기술인력 양성 등 보다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조선해양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회(ISC)가 최근 발간한 이슈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중국의 조선분야 특허 출원 건수는 1만5517건으로 집계됐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15년 제조업 활성화를 위한 ‘중국 제조 2025’ 전략의 일환으로 조선업에 수십조원을 투자하며 특허 출원이 늘어난데 따른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조선분야 특허 출원 건수는 2553건으로 집계됐다. 중국의 특허 출원 건수의 6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국의 특허 출원 건수는 지난 2014년 3692건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ISC는 특허 출원이 감소한 데는 2014년 이후 진행된 조선해양분야 구조조정으로 연구 및 기술직 인력이 크게 줄어든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조선사 연구인력은 1400여명으로 2014년 2260명의 62% 수준에 그쳤다. 그마저도 1220명 수준이던 2018년보다는 소폭 늘어난 숫자다. 기술직 인력 역시 2013년 2만500여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22년 8500여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최근 고부가 선박 위주로 수주량이 늘어나며 조선업이 경기회복 국면에 들어갔지만 열악한 근무여건과 제조업 기피, 조선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으로 신규인력 유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ISC는 조선해양분야 특허가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에서 기술인력과 특허 출원의 감소는 국내 조선산업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특허 출원 건수 증가세는 신규 선박 수주물량 증가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영국 조선·해운업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글로벌 신조선 시장 점유율 60%로 독보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고부가 선박을 중심으로 한 선별수주 전략을 펼치고 있는 한국은 24%를, 일본은 11%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85년 3417건으로 세계서 가장 많은 특허 출원 건수를 기록했으나, ‘플라자 합의’ 이후 불어닥친 엔고 장기불황의 영향으로 조선업계 구조조정을 거치며 특허 출원이 지속 감소했다.
ISC는 “연구개발의 결과물인 특허 출원 증가가 결국 수주량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조선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지식재산권 확보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산업연구원 역시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과 중국의 R&D 격차가 빠르게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산업 R&D·설계 부문의 한국과 중국 사이 점수 격차는 2021년 9포인트(한국 89.1, 중국 80.1)였으나 지난해에는 2.8포인트(한국 92.6, 중국 89.8)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R&D·설계부문에서 한국이 앞서고 있지만 지난해 조선업 가치사슬(밸류체인) 종합경쟁력에서는 중국이 90.6점을 얻어 88.9점을 얻은 한국을 1.7포인트 앞섰다.
산업연은 “(최근) 선박에서 액화수소나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은 조선업이 첨단·핵심기술 없이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의미”라며 “선박 관련 첨단·핵심기술의 확보와 상용화를 위한 투자가 지속돼야 한다”고 했다.
ISC는 한국 조선산업의 기술 초격차 유지를 위해서는 민·관·학·연의 정책 개발과 지원이 절실하다는 제언을 내놨다. 또, 조선분야 특허 출원 활성화를 위해 연구 및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동시에 영세한 기자재 업체들을 대신해 지식재산권 관리업무를 전담하고 특허풀을 관리할 전담기구 설립도 필요하다고 봤다.
ISC는 “조선업 구조조정 이후 급감한 특허 출원이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면 조선업이 쇠락해 간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따르게 될 것”이라며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와 자율운항선박의 등장 등 기술격변기에 원천기술로 강한 특허를 창출하고 브랜드화에 성공한다면 기술 초격차를 통한 우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